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훌러덩 2004/01/2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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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네트가 별을 덮고 전자와 빛이 뛰어다녀도 국가나 민족이 사라져 없어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는 근미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中). 공각기동대를 보면 모든 인간은 '네트'에 의해 접속해 있다. 근미래의 인간이 왜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를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고찰이 이 책에 있다.
책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소유가 핵심인 자본주의가 접속이 핵심이 되는 자본주의로 이향하는 징후들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2부는 이러한 접속 중심의 자본주의가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
책에 거론된 백남준의 말처럼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선 '더 이상 살 것이 없다'. 한두대의 자동차, 여러대의 tv, 그리고 각종 가전제품등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풍족한 혜택을 입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소비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소유에 집착하는 대신 체험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그 궁극적인 체험은 문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쉽고 변하는 기호에 발맞추어 기업들은 가벼운 제품, 소형화, 저스트인타임 재고관리, 리스, 아웃소싱 등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헐리우드의 운영시스템과 나이키의 생산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접속의 시대는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일부에선 접속의 시대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조화와 협력을 증진시켜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형성시킬 것이라는 긍정적인 주장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각에 회의적이다.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인간의 행동의 원천은 문화에서 나오며 이러한 문화를 지탱시켜주는 것은 사회적인 신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문화산업은 문화의 다원성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하향평준화는 물론이거니와 문화라는 종의 다양성을 말살할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인 신뢰가 아닌 금전적인 거래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사상누각과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접속의 시대 자체의 부정적인 전망이 아니다. 접속의 시대의 징후는 여러곳에서 포착되고 있으며 또한 접속의 시대를 향해 우리는 착실히 발걸음을 떼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접속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후기자본주의의 열매를 손에 쥔, 전세계 인구의 20%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80%의 인류는 접속은 커녕 아직 소유의 시대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상대적인 소외감은 접속의 시대에서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공각기동대에선 인간의 두뇌까지 해킹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는 접속의 시대에 대한 음울한 장송곡처럼 들린다. 그러나 접속의 시대가 아직 도래한 것은 아니다. 접속의 시대가 과연 올 것인지, 온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올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간결하고 명쾌한 길라잡이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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