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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열탕사이
'나는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었지만, 내 삶 전체가 그 일에 달려 있음을 알고 한 점 의심도 없이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면 그것은 곧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탐정이야기. 탐정은 의뢰인의 의뢰를 받고서 누군가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미행이란 극도로 자신을 억누르는 과정. 탐정은 단순한 PRIVATE 'EYE'가 되어야 한다. 효과적으로 미행과 관찰을 하려면 자신은, 뇌의 사고과정과는 무관한, 도구로서의 눈이 되어야 한다.

오랜 미행과 관찰의 시간이 흐른다. 이제 탐정은 자신이 미행과 관찰을 하는 대상과 호흡을 일치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누군지를 잃어버리고 관찰하는 그 사람이 된다. 이제 그 사람을 힘주어 관찰할 필요도 미행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그가 되어 버렸기에 그가 할수 있는 행동을 예측하기에 이른다.

첫번째 이야기는 탐정이 대상과 닮아버려 더 이상 자신이라고 부를 것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말하고 있다. 9년간 암흑속에 감금되어 있던 의뢰인과 그를 그렇게 감금했던 그의 아버지를 감시하던 중 탐정은 그만 자신의 삶을 망각하고 그 의뢰인이 떠나버린 빈집에 유령처럼 찾아가, 그 어둠의 방안에서 안식을 찾는다.

두번째 이야기의 탐정 역시 의뢰인이 의뢰한 대상과 하나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의뢰인은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즉 의뢰인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이 되고 탐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관찰을 하게끔 한다. 스스로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고로 탐정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망록을 쓰게끔 하려한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 역시 두번째 이야기의 탐정의 상황과 같다. 그러나 탐정은 자신을 이용하는 의뢰인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번의 탐정은 그 의뢰인과 불알친구이지만, 그에 대한 질투 때문에 의뢰인의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다. 그러나 탐정은 깨닫는다. 그토록 찾아죽이고 싶은 불알친구이자 의뢰인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는 것. 대상에 대해 집착할수록 그 대상에 투사하는 자신의 질투어린 모습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관계...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영원하다면 두 사람 중 어느 하나 혹은 둘다의 자아가 사라짐을 의미하므로. 오스터는 입담좋은 이야기꾼이다. 탐정소설의 형식을 빌어 지루하지 않게 하고, 수많은 삽화의 난무를 통해 생각의 여울을 곳곳에 배치해 두어서 'SMOKE' 같은 여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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