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EBS 책읽어주는 라디오에서 이 책을 낭독하는 걸 들었다. 뒷부분을 조금 남기고 전편을 읽어주었다. 그래서 대강의 줄거리는 안다. 집중해서 듣진 않았서였는지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다음 달에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예고편을 찾아봤다. 그 짧은 동영상에 반해버렸다. 남,여주인공은 내 눈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었는데도 참 예뻤고, 잘 어울렸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개봉까지는 더 기다려야 하고, 먼저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금방 읽었다. 하룻밤만에 읽은 건 아니지만. 결과는 역시 눈물콧물 찍찍. 아프고 아팠다.
두 남녀의 로맨스가 이루어지지 않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500일의 썸머>의 두 주인공이 결국에 헤어져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비극의 강도가 훨씬 높다. 책을 덮고 나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더랬다.
윌도 루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는데, 박아놓은 그 날짜를 그렇게 꼭 고수했어야 했을까. 그가 야박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기간을 연장하고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안됐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도 그런 결정을 하는 거면, 윌도 오죽했을까 싶어서 더 마음이 아프고. 딜레마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의 감정이었다.
윌의 고통이 사실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랑의 힘으로 좀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고백에 따르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 이상 같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맘껏 사랑해줄 수 없는 괴로움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거기서 나는 그를 더 붙잡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벗은 몸을 보면서, 그 정신 나간 옷들을 입고 별채를 돌아다니는 당신을 보면서…… 내가 당신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아, 클라크. 지금 당장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를 겁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걸 알면서 살 수는 없어요. 못 합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순응하는…… 그런 부류의 남자가 아니에요.”
결코 현실에 순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도 그건 안 되겠다는 윌이 못되고 미우면서도, 그 속을 어찌 다 알겠는가. 그의 통증과 깊은 우울을 어찌 다 상상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죽음을 선택하고 그 희망으로 남은 시간을 견뎌낸다고 하겠는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젊은 청년 윌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그 사람이,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루를 생각하는 것도 참 힘들었다. 남은 사람은 아파하다가 점점 감정이 무디어가겠지. 가는 그도 몸에서 해방되어 진짜 자유를 누리겠지. 그렇게 그래, 모두 괜찮을 거야, 하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왜 그런 거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인가. 로맨스의 새드엔딩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일까.
영화는 개봉하는 대로 꼭 보고 싶다. 각본을 조조 모예스가 맡았다고 한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지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속편이 곧 나온다. <애프터 유>. 영어판은 이미 작년에 나왔다. 루가 런던에서 또 다른 윌 트레이너를 만난다는데, 이건 무슨 얘길까. 속편을 꼭 썼어야 했을까? 처음부터 속편이 계획된 걸까? 베스트셀러라는 인기에 힘입어 독자를 위한 서비스로 해피엔딩 스토리를 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엄청 슬프긴 하지만 크게 남겨진 여운을 끝까지 가져가게 해주면 안 되는 거였나? 웃기지만, 이러면서도 책이 나오면 사서 읽을 것 같다.
존엄사, 안락사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싶다. 인도영화 <청원>도 보고, 관련된 책들도 읽어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싶다. 존엄사는 자신이 선택하는 거니까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보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