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서 한강이라는 작가의 매력을 알게 됐고, 그의 팬이 된 것 같다. 전작을 읽어보고 싶고, 앞으로 그가 쓰게 될 책들도 궁금하다. 독특하고도 신비하고 기괴하고 흥미롭다. 읽는 내내 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고, 여운을 크게 남기는 소설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책, 남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한 책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어떤 경각심을 던지고자 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 불꽃>을 읽으니 가족에게 행해진 아버지의 폭력이 생각보다 수위가 높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인혜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버지는 영혜에게 더 심했다고 한다. 영혜는 폭력과 육식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느낀 것 같다. 영혜를 문 개를 오토바이 뒤에 끌고 다니며 처참하게 죽이고 나서(그래야 개고기가 맛있어진다는 이유로) 그걸 영혜에게 먹이는 장면. 육식을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회를 뜨고 닭을 토막내는 건 아무렇지 않게 해야 했던 집안의 여자들. 자신에게 맞는 전자제품을 고르듯 배우자감을 고른 영혜의 남편. 때리진 않았지만 구석구석 폭력적이었던 그의 태도들. 자신의 예술적 성취와 욕망을 위해 도덕을 내려놓고 처제를 취한 형부...
영혜의 가족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큰 내상을 입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간다. 큰딸이 이사했다고 와서 축하파티도 하고, 일상적인 가족들처럼 살아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힘에 있어 가장 윗자리에서 기세등등하게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맞은 만큼 다른 애들을 때려서 분출했고, 어머니는... 모르겠다. 폭력에 피해자인 두 자매는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하고 삭이고 살아왔다. 애정과는 먼 결혼을 하고 그럭저럭 남들처럼 살았다.
하지만 결국, 터져야 할 것이 영혜의 꿈을 통해 터져나왔다. 영혜는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싶었다. 뿌리를 땅에 박고 햇빛과 물만 먹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 고기가 되지 않고 식물이 되어야 아버지 같은 육식동물에게 먹히지 않는다. 아버지를 떠나도 끊임없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육식동물들에게서 해방될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영혜의 무의식은 아우성쳤을 것이다.
영혜는 언니에게 왜 죽으면 안 되냐고 했다. 흙속에 묻혀 나무뿌리와 같이 사는 것만이 그녀에게 위안이요 안식이지 않았을 런지. 나는 그런 영혜가 이해가 됐다. 그걸 억지로 막으며 호스를 꽂아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의료진의 모습은 폭력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그녀를 살리려고 하는 거라지만... 일단 병원에 들어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존엄사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이기에.
부모도 남편도 버린 영혜를 돌볼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언니 인혜도, 영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약하고 자신을 더 닫고 살았던 영혜가 먼저 드러났을 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줄 알았지만 트라우마는 그녀들의 삶을 잠식해 먹고 있었다. 의욕, 열정을 빼앗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할 남자와 무기력한 결혼을 했던 그녀들. 앞으로 살아갈 인혜가 더 걱정이 된다. 자식이 있음으로 쉽게 자기를 버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위태위태하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힘을 자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분노하며 살길 바래본다.
한강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모호한 상징들 속에서 독자는 언뜻언뜻 그 의미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 와중에 무언가 가슴을 후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아프고, 공감되고, 나에게도 있는 폭력성 같은 것들. 문득, 남성이 읽은 《채식주의자》는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