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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
  •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 15,300원 (10%850)
  • 2017-08-07
  • : 36,526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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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읽었다. 예상은 했지만 매우 야하고(지하철에서 흠칫흠칫, 괜히 페이지를 빨리 넘기게 되는). 하지만 정말 재밌었다. 유명한 이유는 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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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발간. 하루키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이 책의 또 다른 이름은 <상실의 시대>. 나는 '상실의 시대'가 더 맘에 든다. '상실'이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라서. 


상실하다 : 

1. 어떤 사람과 관계를 끊거나 헤어지다.

2. 어떤 것을 아주 완벽히 잃거나 사라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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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필기하고 싶은 부분이, 꽂힌 부분이 많았는데, 계속 들고 다니면서 읽고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느라 원래 하듯이 일일이 다 필기를 못 했다. 그래서 다시 읽어봐야 한다. 다시 읽었을 때는 더 많이 이해하길. 열린 결말이고, 나는 열린 결말에 약하긔.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다. 


이 책을 통해 하루키가 품고자 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의미라고 한다 :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에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럼 삼각관계의 이야기라는 면이 있다는 말이군요. '나'와 나오코와 미도리가 가장 큰 삼각관계라도 한다면, '나'와 기즈코와 나오고" 라는 질문에 하루키는 이렇게 답변하였다고 한다 :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나오코, '나'와 미도리는 평행 하는 흐름입니다. 삼각이 아니지요. 정말로 삼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와 나오코와 기즈키 군의 세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와 레이코 씨와 나오코의 세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와 하쓰미 씨와 나가사와 군의 세 사람이지요. 이것은 삼각관계 입니다. 세 사람이 일체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가니까요. 하지만 '나'와 미도리, '나'와 나오코는 평행하고 있습니다. 


열린 결말이 되려 허망하디 허망한 20대의 감정과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모든 불안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 같다. 여운이 깊어도 너무 깊게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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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난 후 다시 앞장으로 가 20년 후 현시점의 남자 주인공 나레이션을 다시 읽었어야 했다. 정말로 그 생생했던 관계와 순간들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건가. 정말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라고 믿는 것일까. 결국 목메게 하는 애달프고도 간절한 사람도, 관계도, 순간도, 시간 앞에서는 소용없는 것인가.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Norwegian Wood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의 가사는 원 나잇 스탠드를 실패한 존 레넌의 경험담이라고 한다. 여자 집에까지 놀러 갔으나 원하던 원나잇은 얻지 못하고 욕조에서 자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자는 벌써 나가고 없어서 복수심에 여자가 아끼던 노르웨이산 가구에 불을 붙인다는 내용의 가사다.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레넌이 아내와 알프스에 놀러 갔을 때 이 가사를 썼다고 하며 아내가 알아치를 수 없도록 가사에 연막을 쳤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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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성생활은 동의하지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 무덤덤하고 어떤 면에서는 감성적인. 감정 기복이 크게 있지 않고 행여 감정의 변화가 있더라도 외부로 티 내지 않는, 스스로 헤아리는. 들뜨며 기쁨을 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슬픔과 좌절도 묵묵히 견뎌내는. 위스키 홀짝홀짝 마시며 책을 읽는. 대학강의와 알바 시간은 철저히 지켜가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틈틈히 독일어 공부를 하는.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일명 '그러려니' 및 '그럴수도 있겠다' 마인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는, 그리고 답변이 오지 않아도 꿋꿋이 기다리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정말 지향하는 한 사람의 성향. 


태엽을 감는 생활을 하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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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마지막 잠자리는 대체 왜 가진 건지 설명해줄 사람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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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만이 영원히 열일곱이었다.
무슨 말이든 좀 해봐, 미도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옹알거렸다. 너, 정말 귀여워 (이름 붙여서). 정말 귀여워, 미도리 (정말이라면 얼마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 버릴 만큼 귀여워.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 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오늘은, 악씨, 나랑 같이 뒹글지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그 정도로 네가 좋아.

괜찮아, 아무 걱정 하지마. 모든 게 잘될 거야.
자신을 동정하지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를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 인생이란 그런거야.
난 이제 아무하고도 자지 않아. 네가 나를 어루만지던 때 그 느낌을 잊기 싫어서야.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게 중요한 일이야. 나는 늘 그 순간을 생각해.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삶의 한 복판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들이 이곳에 와 있는건, 그 비뚤어진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뚤어진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고 했어. 우리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그 비뚤어진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는 거야.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럴 만한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지, 그 누군가가 상대에게 이해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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