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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
  • 점프 엮음
  • 16,200원 (10%900)
  • 2025-05-16
  • : 655


 

책이 나를 찾아온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린 좋은 어른이 될 거야>도 그랬다. 스물한 살 무렵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교사란 말 대신 쓴 ‘강학’이라는 자격으로. 나와 함께 한 학생들은 단 한 명을 빼곤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초등학교만 나오고 공장을 다니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들의 자취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우깡을 나눠 먹고, 검정고시를 치르고 같이 시를 읽던 그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처연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개인의 현실은 아팠고 가르친다는 나 자신에 대해 한계를 느껴야 했으며 이런 세상에 대해서는 분노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를 떠올렸다.

 

이 책은 ‘점프(JUMP)’라는 교육 소셜벤처에서 활동한 젊은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점프는 젊은 멘토(장학샘이라 부른다)들을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민 청소년, 혹은 경제적으로 취약하거나 어른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멘티들과 연결해 학업을 돕는 단체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 지원이다. 자기를 믿고 지지해 줄 어른, 실수를 하더라도 품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점프는 주로 장학샘이 멘티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있구나’하는 심리적 지지를 해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점프 프로그램이 감동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없이 성실하고 다정한 점프의 장학샘들은 그들 역시 성장의 도상에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점프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성장의 동력이 멘티들이었음을 깨닫는다. 가르치는 자였으나 ‘나 역시 배웠구나’, 라고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인터뷰에 묻어나는 장학샘들의 공통된 ‘겸허함’의 정체는 바로 그런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다.

 

내내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끝부분에서는 그만 눈물을 훔쳐야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학교에 난리가 나고 수업은 중지돼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고3들은 약속한 것처럼 한밤중에 학교에 모여 어른들이 버리고 간 강당의 담배꽁초며 쓰레기들을 주웠단다. 그날 밤 그 아이들의 마음으로 그 어둑한 학교에 함께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컥했다. 점프는 단원고 3학년 회복을 위한 점프 학습 멘토링 프로그램를 진행했다. 대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학습 지원이나 진로 특강뿐 아니라 정신과 상담 프로그램까지.

인류가 수많은 재난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유가 무얼까.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진한 연대의 손길을 나누는 ‘인류애’의 정체는 뭘까. 어떤 진화론자는 그것이 생존의 전략이었다 하고 어떤 역사학자는 소통과 공감만이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는 최고의 무기였다고 분석한다. 점프는 그 명제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나의 중학생 제자들에게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문해력 읽기 자료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여기에 점프의 이야기를 넣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광주에서, 단원고에서, 그리고 온갖 참사의 현장과 고통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손을 내미는지에 대해 읽게 하련다. 너희들도 그렇게 손 내미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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