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매우 유명하다고들 한다. 탄핵 국면에 국회측 변호인단 중 장순욱 변호사가 ‘아름다운 헌법의 말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말함으로써 차가운 헌법 정신을 가장 따뜻하게 표현했을 때, 바로 이 책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온 지 꽤 오래된 이 책을 뒤늦게 읽어보았다. 내가 상상한 ‘아름다운’ 헌법의 풍경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더러운 사법 카르텔을 고발하는 데 더 가까운 책이었지만.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이것이었다.
헌법 제11조 제2항 ;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형태로든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이 당연한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2024년 12월 3일 계엄 사태 전후에 일어난 대한민국의 여러 사건들이 마치 ‘사회적 특수 계급’의 손아귀에 나라가 뒤흔들린 사건인 듯 보여서이다. 책은 주로 사법 권력의 비리와 ‘법리주의’의 맹점을 짚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차가운 법리주의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권력으로써 법을 왜곡하고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오늘날 법꾸라지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본문 내용 중 ‘영자 신문 읽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미국 법학대학원 공부에 무리가 없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나라 법 공부의 대부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생활과 동떨어진 한자 표현들을 익히는 것이 기본이란다. 그 위에 그 법조문들을 외워야 하다 보니 정작 그것을 ‘잘’ 적용하는 데에서는 허점이 생기는 게 아닌가.
검사의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건이 검사에 의해 무혐의 또는 기소유예로 걸러진다는 대목은, 이제는 온 국민이 아는 내용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정의로운 자들도 지나친 권한을 갖게 되면 그것을 권력으로 인식하고, 전횡하려 든다. 어쩌다 대한민국 검사는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막강 권력자 집단이 되어 버렸나. 그 핵심은 바로 이 기소독점주의다. 그걸 깨려 많은 이들이 정치적 노력을 했지만 처절한 복수로 돌아오곤 했다. 이젠 그걸 해내야 할 때가 왔다.
내란을 겪으며 새삼 범조 카르텔이야말로 그 어떤 카르텔보다 막강함을 느낀다. 아무리 탄핵 발의를 해도 결코 탄핵되지 않는 검사들, 그리고 아무리 재판이나 사법을 이현령비현령 왜곡하고 사적 이익의 도구로 써도 어떻게도 단죄할 수 없는 법관들을 보면서 답답했다.
로마제국 시절에도 잘못된 판결을 내린 법관은 1년간 직무정지에 처하기도 했다는데 어쩌다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은 이토록 무소불위, 이렇게 공고해졌단 말인가.
그래도 어쩌다 내란을 계기로 헌법 정신을 들여다 보며 새삼 헌법의 아름다움을 느
기게 된 건 성과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내용 중에는 ‘헌법 제11조 제1항 –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함에도 격렬한 반대의 산을 넘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한법에는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특권을 누리는 자들, 모멸을 견디는 자들, 계급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결국 그 누구도 차별하지 말고 모두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진정한 헌법 정신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