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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자들의 죽음
  • 고미숙
  • 17,100원 (10%950)
  • 2023-12-31
  • : 5,401

예수에 대해 다시 읽고 싶어하다가 <왜 사는가>라는 책을 발견하고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다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의 방점은 물론 ‘죽음’에 찍혀 있지만 본의 아니게 ‘현자들의 삶’에 푹 빠져 한참을 지낸 셈이 되었다.

 

죽음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또 세사를 접하면서 죽음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하면 살긴 하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죽음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류의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생각을 말하라 하면 나는 과학적 관점에 의거,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영혼은 없다, 라고 생각한다. 환생을 믿지 않으며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 원자와 분자로 돌아갈 것이며, 그렇게 다른 존재로 환원될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이생에 이루어 놓은 정신적 가치가 다시 내게 추억으로 돌아올 일은 없다. 그저 ‘생물’로 태어난 생명의 의무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물론 가치 있는 죽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 회귀되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남아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좋은 죽음. 그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 죽음이, 아니 삶이 그나마 좀 나아지려면 이런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도 해준다. 죽음 앞에 초연하기란 예수도 어려운 일이었겠으나 조금이라도 의연해지기 위해 품위 있게 살아볼 생각이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어떤 힘이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그게 내 노력과 반드시 비례하란 법 없음을 알지만 적어도 요행을 바라거나, 내 노력으로가 아니라 그저 주어진 어떤 행운에 대해 오만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저자 고미숙이 그들을 선정한 기준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 말고도, 죽음에 초연했다는 것, 삶의 태도 역시 죽음을 그렇게 바라본 것처럼 명랑하고 발랄했다는 것.

 

한없이 엄숙 진지하기만 했던 대한민국 진보 진영에 ‘발랄한 진보’를 외치며 그에 기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영향과 더불어 많은 21세기 젊은이들이 명랑하고 유쾌한 진보적 운동을 펼치면서 한국 정치와 문화가 발달했다. 아니, 문화적 변화가 정치적 변화로 이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20세기, 즉 1980년대 학생운동과의 차이이다. 이런 변화의 선두에 고미숙 같은 학자, 엄숙을 떨쳐버린 학자가 있었던 것이다(그가 제시한 연암론의 신선함이란).

다만 세상의 많은 시인, 문인, 학자들이 변혁을 꿈꾸며 거리로 나가고 총을 들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 나를 포함하여, 책상 앞에서만 진보는 논하는 사람들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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