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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의 상형문자
  • 고명섭
  • 8,100원 (10%450)
  • 2017-11-20
  • : 91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인 그랑그루아가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서술자, 혹은 호메로스 같은 시인일 수도 있다. 고명섭은 인류사의 파노라마를 타고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무대에 선 사회자 역할을 한다. 때로는 변사처럼 주인공의 목소리를 내고 때론 주인공 혹은 대척자나 주변인물들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시집을 읽었는데 역사극을 본 듯도 하고 심리와 상황 묘사가 탁월한 대하소설을 읽은 듯도 하며 새삼 짚어보는 철학자, 문학가, 역사 속 인물들을 가장 처절하고 부끄럽고 나약하고 비루한 밑바닥의 개인 서사로, 업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는 기분이 든다. 9000원밖에 안 되는 이 책은 마치 얇으나 깊은 마법서 같다.

 

고명섭 시는 모든 시가 ‘서사시’이다. 과거형 어미가 형식을 지켜 올리는 고대의 연극을 연상케 하기에 현대시적인, 즉 ‘시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탐색, 탐구의 여정을 호메로스 같은 고대 시인의 서술 형식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시 속에는 플라톤이 등장하고(이데아, 빛) 비트겐슈타인의 서사가 있으며(헛간의 빛) 카프카가 담긴다(몰래 쓴 편지). 니체와 칸트를 아우른다. 그들 자신이 쓴 책도, 그 주장을 재해석한 책도, 소설로 그 삶을 재구성한 책도 세상에는 많지만 마치 그들이 되어 그 삶을 살아본 듯 그들의 몸이 되어 아픔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그들이 걸었던 흙길을 같이 걸으며 밤 늦은 시간 펜촉을 사각거리거나 열등감에 젖어 고개를 숙이는 이런 시는 없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지만 그걸 통섭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자들은 더 많지만 그게 지금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고명섭이라는 한 평범한 기자는 어떻게 그런 경지에 갔을까.

이것을 뒤에 평론을 쓴 신형철은 ‘(고명섭은) 자신이 천착한 사상가와 예술가의 삶의 한 국면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본 것이었으리라.’ 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 는 이런 고명섭의 목적의식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무너진 집, 돌담 옆에 주둥이를 잃어버린 항아리

물기 없는 흙바닥의 아가미처럼 헐떡거리는 아가리

병조각 널린 길에서 발가벗고 뒹구는 몸뚱이

벌레 먹은 세월이 엉겨 썩어 들어갈 때

책의 문을 열면 굴뚝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갔다.

책 속으로 난 길은 하구의 강줄기같이 흩어지고

숲은 깊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 잎사귀를 뚫고 햇살 몇 가닥 들어와

큰 나무뿌리의 이끼에 맺힌 빗물의 잠을 깨웠다

이 숲 어디엔가 손길 닿지 않은 유적 묻혀 있지 않을까

...

 

책 속으로 들어가 책과 책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멋대로 난 풀잎의 혓바닥이 종아리를 스치고

사금파리들이 발가락에서 피를 핥았다

손전등을 들고 더듬어 보는 숲의 상형문자

입 꼭 다문 문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 고명섭 <상형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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