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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에서 만난 말들
  • 목수정
  • 14,400원 (10%800)
  • 2023-09-20
  • : 1,095

목수정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정치적 지향은 나와 비슷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닮았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의 삶을 꿈꾸는 나 대신 그걸 직접 살아가고 있는 그의 ‘체험 삶의 현장’, 거기 더해진 통찰적 지성은 내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준다.

 

사실 프랑스어야말로 내 ‘희망 외국어 공부’ 1순위였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공부했고 대학에 가서 교양 불어 수업을 들었다. 언어에 재능이 있었더라면 좀 더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연인’이 된 프랑스어에 대한 이야기를 목수정이 들려준다. 적으나마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 프랑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보련다.

 

‘아름답다’를 입에 달고 사는 프랑스

닮고 싶은 프랑스 문화를 알게 되는 점도 좋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천지 만물 속에서 시시각각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찬미하며 서로의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오랜 언어습관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단다. 열정적인 모습도 좋다. 프랑스어에 ‘Je n’ai pas d’envie – 앙비가 없어(간절하지 않아)‘ 라는 말은 ‘전 괜찮아요’ 쯤 되는, 권유를 차단하는 말이라지만 속뜻을 보면 간절한 열망만이 우리를 움직일 거라는 의미가 있단다.

 

코팽 – 바게트는 저렴하다

1970년대까지 바게트 가격을 국가가 매년 정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다른 책에서 목수정은 우리가 ‘식구’라는 단어를 갖고 있듯이 프랑스인들도 친구를 ‘코팽(copain)(함께 빵을 나누는 사람)’이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쌀값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갖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지금도 바게트는 저렴하게 판다. 2023년 평균가 1유로에 약 80센티 길쭉한 것이나 60센티 통통한 것 2종을 판단다.

 

절박함의 정신분석학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살아남은 유대인 그룹 중 어린 나이에 레지스탕스 활동한 그룹은 우울증을 겪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전사’라는 자의식이 그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울증을 가장 심하게 겪은 수용소에 끌려갔던 아동 그룹은 대신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경우가 많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행복에 과잉투자한 결과이다.

 

이 내용은 매우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절박함은 사람을 성공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물론 궁지에 몰려 회생의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제 3세계의 수많은 역사와 비교해 보면 유대인들의 삶의 특수성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상처를 노력과 성공으로 극복하려 애썼다는 이야기 말고, 스스로 전사로 싸웠던 이들이 우울증이 적었던 이유와 상관관계는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강한 자의식과 자존감을 갖는 일은 성공이나 성취와는 다른 영역이다.

 

프랑스 엄마들에게 한국이 배워야 할 것

프랑스 엄마들은 마지막에 안아주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성에 호소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어려도 얼굴을 마주 보고 화나지 않은 목소리로 게임의 규칙을 단단한 어조로 설명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나 <프랑스 아이처럼>에 소개된 이야기를 종합하면 프랑스 가정교육은 매우 엄격한 편이고 일관된 면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공교육도 문제, 사교육도 문제이지만 가정에서의 교육은 더더구나 일관성도 없고 교육이랄 것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경향이 있다. 다정하지만 단호한, 그리고 일관성 있는 교육의 태도는 부모와 교사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정책의 연대, 박애와 복지

저자는 문화 발전에서 정책과 제도가 중요함을 말하면서 90년대 스크린 쿼터제를 언급한다. 어지간해서 집단행동이나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는 영화인들이 대거 거리로 나와 스크린 쿼터제 유지를 주장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남지 못하고 외국영화로부터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건가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한국영화 발전의 바탕이 되었을 거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장하준 교수도 <맛있는 경제학>에서 했던 것 같다. 취약한 존재에게 공동체나 가정, 가장이나 리더가 생명줄을 붙들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지원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국가가 펼치는 정책과 제도는 그런 역할을 한다. 자유시장경제니 적자생존을 아무 데서나 떠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평등을 지향하면 만든 모든 정책에 솔리다리테(연대)란 말이 들어간단다. 프랑스 혁명 정신 중 박애의 현대 버전으로 봐야 할 듯하다고 말한다.

목수정은 결혼 대신 그와 거의 비슷한 효력이 있는 ‘팍스시민연대’계약을 했다. 저소득층에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비를 ‘활동연대수입’이라고 부른다.

 

혐오와 저출산

한국에서 저자 소개 등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유럽에서는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유럽의 인종 쓰레기로 모는 4종 세트는 극우 인종주이자, 마초, 동성애 차별주의자, 유대인 차별주의자란다.

혐오와 차별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야말로 혐오가 분열로, 결국 사회 파괴로 나아가는 대표적 사례일지도 모른다. 지금 뿌려진 분열을 씨앗으로 앞으로 더 대대적인 홍역을 치를지도 모른다.

 

마치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절반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남성들의 보편적 인식에 기대 아젠다를 이끌었듯. 젊은 여성들의 반정치 의식이 비혼과 출산 거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는 현실처럼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그치지 않으면 오래오래 엉뚱한 뒤치다꺼리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이다.

 

갈등이 파도를 치지 않으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땅 밑으로 곪고 썩는다. 지금의 남녀갈등이나 저출산 문제 등은 미투와 연관해 남녀차별의 쌓이고 쌓인 갈등이 폭발하고 떠오른 부산물이라 생각한다. 반드시 한 번은 겪어야 할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방인과의 갈등, 소수의 약자들을 대한 비뚤어진 시선의 문제들도 언젠가는 터지고야 말 일이다. 약자가 언제까지나 소수는 아닐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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