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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
  • 플라톤
  • 10,800원 (10%600)
  • 2006-04-25
  • : 275

고발장 내용

<고발장>

"소크라테스는 범죄인이다. 청년들에게 유해하고 파멸적인 영향을 주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며 다른 새 귀신에 제사 지내고 있다."(47쪽)

소크라테스의 2가지 범죄

소크라테스가 저지른 범죄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청년들에게 유해하고 파멸적인 영향을 준다.
2.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정말 청년들에게 유해하고 파멸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하나씩 변명하기 시작한다.

먼저 첫번째 변명

'소크라테스는 정말 청년들에게 유해하고 파멸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가?" 직접 들어보자.

멜레토스! 이리 나와서 대답해 다오. 젊은이들을 가능한 잘 되게 선도하는 것을 당신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분들에게 말해 다오. 누가 그 사람들을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당신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상 물론 알고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당신은 청년들에게 해를 끼치고 나쁘게 만들고 있는 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나를 고발하여 이 재판관들 앞에 끌어냈다. 그렇다면 선도하는 자가 누구인가? 자, 이분들에게 똑똑히 말해 다오. 그것 보라. 멜레토스! 당신은 대답을 못하고 잠자코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은 바로 내가 말한, 당신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지 않는가? 아무튼 자네! 누가 그 사람들을 선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법률이다.”
아니, 자네! 내가 묻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법률을 직접 처음 알게 되는 것은 누구냐는 것이다.
“그것은 소크라테스, 여기 있는 재판관들이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멜레토스! 이분들이 청년들을 교육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을 선도하고 있단 말인가?
“바로 그렇다.”
이분들이 다 그렇단 말인가, 아니면 이분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그렇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인가?
“모두가 다 그렇다.”
정말이지, 헤라에 맹세코, 훌륭한 이야기다. 좋은 일을 해주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방청인들은 청년들을 선도하는가, 선도하지 않는가?
“이 사람들도 선도한다.”
그러면, 평의원들은 어떤가?
“평의원들도 그렇다.”
그렇다면 멜레토스! 국민의회에 나오는 의원들이 설마 젊은이들에게 해를 끼치지야 않겠지. 그 사람들도 젊은이들을 선도하는가?
“그 사람들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나를 제외한 아테네 시민 모두가 훌륭하고 착한 인간을 만들고 있지만, 나만 나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군.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인가?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단한 불행을 당신에게서 인정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대답해 다오. 당신은 말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말을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데, 누구 한사람만이 그것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반대로 말을 잘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 한 사람뿐이거나 혹은 극히 소수가 있을 뿐이고, 대부분 인간들은 말과 함께 있거나 말을 다루거나 하며 그것을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어떤가, 멜레토스! 말에 대해서나 다른 모든 동물에 대해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신이나 아니토스가 반대하건 찬성하건 이것은 아주 뚜렷한 일인데, 그런데 청년들에게 만일 단 한 사람이 해를 끼치고,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매우 다행한 일일 것이네.
그것은 그렇고, 멜레토스! 당신은 여태까지 청년들에 관한 걱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었다. 말하자면 나를 이 자리에 끌어내게 된 그 문제에 대해서 당신 자신이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그 무관심함을 지금 당신은 똑똑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50-53쪽)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멜레토스는 청년들에 관한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청년들을 선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답을 못하는 멜레토스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의 어떤 점이 유해한 영향을 준 것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이와 반대되는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은 쉽게 찾을 있는 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이에 멜레토스는 법률이 청년들을 선도한다고 하고 질의응답 끝에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청년들을 선도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아주 다행한 일이라고 한다. 말 같은 동물을 제대로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사람을 제대로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결국 처음 멜레토스는 청년들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자기도 청년들을 선도하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니까 주장의 진실성이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해한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증명하다

이렇게 말했다고 물론 소크라테스가 유해한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선인과 악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가 유해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사람이 사는 데는 좋은 시민들 속에서 사는 것과, 나쁜 시민들 속에서 사는 것과 어느 쪽이 좋은가? 친구여! 대답해 다오. 결코 어려운 것을 묻지는 않았으니까. 나쁜 사람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언가 나쁜 짓을 하지만, 좋은 사람은 무언가 좋은 일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한테서 이익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해를 입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대답해 다오. 친구여! 법도 대답할 것을 명령하고 있으니까. 해를 입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없다.”
자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이 자리에 끌어낸 것은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쳐서 더 나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내가 고의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뜻인가?
“적어도 나는 고의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멜레토스! 나쁜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나쁜 짓을 하고,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당신은 말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일찍부터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만큼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있고, 나는 이 나이가 되었으면서도 함께 사는 사람을 타락시키면 나 자신이 그 사람으로부터 손해를 입기 쉽다는 것을 알지 못할만큼 무지몽매하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결과 엄청난 악을 나 스스로가 자진하여 만들어 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 당신의 주장인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당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멜레토스! 또 이 세상의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실제로 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거나, 혹은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도 그것은 내가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만약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내 고의가 아니라면, 이와 같은 본의 아닌 잘못에 대해서는 이런 자리에 끌어낼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서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 법이다. 왜냐하면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가르쳐 준다면 그만둘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만나서 가르쳐 주기를 피했다. 말하자면 그럴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나를 끌어냈다. 이곳은 징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불려 나올 곳이지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54-56쪽)


이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있고 선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악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한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멜레토스는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고의로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 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따라서 그런 일을 고의로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는 A)남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B)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더라도 고의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멜레토스의 주장 "소크라테스는 고의로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A와 B 어떤 경우가 참이더라도 그릇된 주장이 된다. 만약 B의 경우라면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울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서 가르치고 타일러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법정에 세웠다. 이는 멜레토스가 주위 사람들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에게 좋은 일을 할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멜레토스 자신도 전제를 참이라고 인정했으니까 멜레토스 자신은 '선인은 아니다'란 결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소크라테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가?

두번째 변명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직접 들어보자.

아테네 시민 여러분! 아무튼, 멜레토스가 크든 작든 간에 아직 이런 일에 한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말한 대로 이미 뚜렷해졌소. 그러니 이 이상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소. 그렇더라도 멜레토스! 우리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청년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당신은 주장하는가? 물론 당신이 제출한 소장에 의하면,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말라면서 다른 새로운 귀신 따위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내가 그런 것을 가르침으로써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당신의 주장인가?
“그렇다.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그것이다.”
그렇다면 멜레토스! 지금 언급되고 있는 그 신에 맹세코 나와 그리고 여기에 있는 분들에게 더 똑똑히 말해 다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어느 쪽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종류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데 - 그러나 나 자신이 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고 있으므로, 즉 나는 순전한 무신론자가 아니니까 이 점에서는 죄를 저지로 있지 않다 - 국가가 믿는 신이 아니라 다른 신의 존재를 가르치고 있다고 당신은 말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 즉 다른 신을 믿는다는 것이 당신이 나를 고발하는 점인가? 아니면, 내가 전혀 신을 믿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믿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전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나는 말하는 것이다.”
이것 참 놀랍군, 멜레토스! 어째서 당신은 그런 말을 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태양이나 달을 신으로서 믿지 않는단 말인가?
“제우스 신에 맹세코 그렇다. 재판관 여러분! 이 사람은 태양을 돌, 달을 흙이라고 주장하고 있소.”
당신은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세기의 자연철학자. 그는 신으로 여겨지던 해와 달이 단지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며, 태양 빛이 지구, 달, 기타의 천체를 밝게 만든다고 주장했다.)를 고발할 생각인가, 친애하는 멜레토스! 그리고 당신은 그와 같이 여기 있는 분들을 멸시하여 클라조메나이의 아낙사고라스의 책이 그런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이분들이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게다가 청년들이 그런 것을 나한테서 배우고 있는 줄 아는구나. 그 책은 기회가 있으면 시장에 나가서 기껏 비싸봐야 1드라크마만 주면 살 수 있는 것이며, 내가 그것을 나의 주장인 양 내세우면 금방 비웃어 줄 수 있는 일이다. 워낙 기묘한 주장이니까. 아무튼 제우스 신을 두고 묻지만, 당신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신의 존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제우스 신에 맹세코, 당신은 도무지 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니, 멜레토스! 당신의 말은 믿을 수가 없구나. 게다가 내가 보건대 당신도 믿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내가 보건대,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사람은 아주 무도하고 무례한 사람인 것 같소. 별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고발을 한 것도 그 무도와 무례와 젊은 혈기 탓인 것 같소. 왜냐하면 이 사람은 수수께끼를 만들어서 시험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지혜 있는 자라고 하지만, 내가 장난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는 줄 알까. 아니면, 나는 이 사람과 다른 청중들을 함께 끝내 속일 수 있을까’하고 말이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소장에서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오. 마치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는다. 그래서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러나 이런 것은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면 할 수 없는 말이오.
멜레토스!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믿지만, 인간의 존재는 믿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이 사람이 대답하게 해주시오. 여러분! 이러쿵저러쿵 자꾸만 떠들지 말기를 바라오. 어떤가. 말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 하는 일은 인정하는 자가 있겠는가? 또 피리 부는 사람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지만 피리 부는 일은 인정하는 자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아! 그런 자는 없다. 만일 당신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여기 있는 다른 여러분을 위해서 ‘없다’ 이렇게 말하기로 한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해 주기 바란다. 귀신이 하는 일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만, 귀신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체면을 보아 부득이한 대답이기는 하겠지만 대답해 주어서 매우 고맙다. 자, 그런데 당신의 주장에 의하면, 나는 귀신 따위를 믿고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새삼스러운 것인지, 오래된 것인지는 다음으로 미루고, 아무튼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내가 귀신 따위를 믿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당신의 소장에도 그것을 선서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귀신 따위를, 귀신이 하는 일을 믿는다면, 틀림없이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그렇다. 당신이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까, 동의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귀신을 우리는 신 또는 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가 당신은 이 주장에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
“확실히 나는 찬성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주장하듯 내가 귀신을 믿고 있다면, 그리고 그 귀신이 무슨 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내가 주장하듯이 당신은 수수께끼를 내걸고 장난을 치고 있는 셈이 된다. 당신은 처음에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귀신은 신이므로 이번에는 나는 신을 믿는 것이 된다. 그리고 또 만일 귀신이 신의 방계의 자식들로서 님프나 그밖의 전설에 나오는 어떤 여성들한테 태어난 사생아라면, 신의 자식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만 신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노새가 말과 나귀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할 것이다.
아무튼 멜레토스! 당신이 이런 고발을 한 것은 이런 점에 관해 우리를 시험해 보고 있거나 아니면 나를 고발하기 위한 진짜 죄상이 발견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이며 그 이외의 것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지성을 가진 사람을 붙잡고, 어떤 사람이 귀신이 하는 일은 믿고, 신이 하는 일은 믿지 않거나, 다시 또 이러한 일들은 믿는 사람이 귀신도 신도 반신도 믿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해봐야 소용 없는 것이다.(57-65쪽)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 귀신을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간다. 귀신도 신 또는 신의 아들로 생각한다고 멜레토스에게 묻고 이에 멜레토스도 동의한다. 신의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신의 존재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노새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한다. 노새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말과 나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새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말과 나귀의 존재도 인정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를 비방한 신을 믿지 않으며 귀신을 믿고 있다는 주장은 모순된 주장이다.
이렇게 해도 의문은 남는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국가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귀신이 더 뛰어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지않나. 마치 자신만의 신이 최고신이고 다른 종교의 신들은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종교집단처럼.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이 국가의 신의 뜻에 따른 삶이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의 삶은 델포이의 신 아폴론의 뜻에 따른 삶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는데 그 내용이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 있는 자가 있는가 없는가는 아무도 없다'였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지혜 있는자를 찾아가며 신탁의 내용을 세상에 드러내려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한 내용을 옮겨본다.

나는 이 사람보다 지혜가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나도 사실상 아름다움이나 선을 모르고 있지만 이 사람은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반면, 나는 모르니까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깨달은, 오직 그것만으로 내가 더 지혜가 있는 모양이다.(32쪽)

"인간들아, 그대들 가운데 소크라테스와 같이 자기의 지혜는 사실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지혜가 있는 자니라."
하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지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나라 사람이건 외국 사람이건 적어도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신탁에 따라 찾아가서 조사하고 있는 것이오.
그리하여 지혜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는 신을 도와 그 사람이 지혜가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오. 그리고 이 일이 바쁘기 때문에 나랏일이건 집안일이건 이렇다 할 가치가 있는 무엇을 할 여가가 없고, 무척 가난하게 살고는 있소만, 이것도 다만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오.(43쪽)

그의 지혜는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아는 지혜였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지적 정직성이 지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선택한 까닭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모두 들었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독자에게는 의문이 생길 것 같다. 죄없는 소크라테스가 왜 악법대로 죽음을 선택하느냐고.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그대는 부끄럽지 않은가. 평소에 그런 일을 하다가 그 때문에 지금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
하고 말이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오.
“당신의 말은 옳지 않소. 여보시오!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협을 헤아려서는 안 되오. 그는 어떤 일을 하면서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나쁜 행위를 하느냐, 곧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약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하는 것만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의 그와 같은 주장을 따른다면, 저 트로이아에서 생애를 마친 반신들은 하찮은 것들이 되는 셈이니까. 그 중에서도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같은 이는 수치를 참는 데 비하면 그런 위험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헥토르를 죽이려고 서두르는 그에게 여신인 어머니가,
“내 아들아! 만일 네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으려고 헥토르를 죽인다면, 너 자신도 죽게 될 것이다. 헥토르의 바로 뒤에서 사신(死神)이 너를 붙들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뭐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나는 아오만, 아킬레우스는 이 말을 듣고도 죽음이나 위험은 아랑곳 없이, 오히려 친구를 위해 원수를 갚지 않고 비겁한 자로서 살아남게 되는 것을 훨씬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그 나쁜 자에게 벌만 준다면, 저는 당장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남아 이 땅 위의 웃음거리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적에게 원수를 갚고 곧 죽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대답한 것이오. 설마 당신은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위험을 걱정했다고는 생각지 않겠지요. 다시 말해서, 아테네 시민 여러분! 진실은 다음과 같소. 사람이 어느 자리를 최선으로 믿고 자기를 앉히거나, 혹은 윗사람에 의해서 그 자리에 배치될 때는 그 자리를 지키려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오. 죽음도 그 밖의 그 무엇도 결코 수치보다 먼저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신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탐구하는 애지자(愛智者)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나에게 명령했을 때 - 나는 그렇게 믿고, 또 풀이했소만 - 죽음의 공포나 또는 기타의 공포 때문에 나의 자리를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무서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될 것이오. 그때야말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로서 나를 법정에 끌어내야 마땅할 것이오.

그것은 신탁의 뜻에 따르지 않고, 죽음을 무서워하며, 지혜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여러분! 바로 지혜로움을 가장하는 것이지 진정한 지혜로움은 아니기 때문이오. 그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체 하는 데 지나지 않소. 그리고 죽음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소.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하오. 이러한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요? 인간으로 하여금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확신하게 하는 무지가 아닐까요?
그러나 여러분! 나는 이러한 점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과 다를 것이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그 어떤 점에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후(死後)세계에 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오. 그러나 옳지 않은 짓을 한다는 것, 신이거나 사람이거나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는데 이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이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그래서 나는 악인 줄 알고 있는 이들, 나쁜 것들보다 어쩌면 좋은 것인지도 모르는 쪽을 결코 무서워하거나 피하지는 않을 것이오.(66-71쪽)

그 까닭은 신탁에 따르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애지자(愛智者)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신으로부터 명령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확실하지도 않은 죽음이 악이란 생각 때문에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신탁의 명령인 애지자의 사명을 저버리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국외로 탈출한다고 애지자의 사명을 더 잘 해낼 수도 없는 환경 아닌가. 자신의 고향에서도 버림받은 자가 국외에서 애지자로서 인정을 받겠는가. 그곳에서도 같은 취급을 받고 고발을 당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앎에도 국외로 탈출을 선택하는 것은 죽음이 무서워 피하는 것과 다름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피하지 않음으로써 신탁의 명령에 따르고 자신의 삶의 진실성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피한다는 것은 신탁을 저버린다는 뜻이고 이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는 멜레토스의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주장이 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써 신을 믿고 있음을 증명하고 멜레토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살아갔기에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끝으로 작품해설 중에 나온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본다. 지적 정직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끊임없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살폈던 위대한 철학자를 생각하며.

로고스를 싫어하지 말아라. 너무도 로고스를 쉽게 믿어 버리면 나중에 다른 로고스가 있음을 발견했을 때 충격을 받고, 로고스는 모두 불확실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리하여 로고스를 싫어하게 됨은 로고스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나쁜 것이다.

라고 경고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우리는 그리스 사상의 가장 건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144쪽)

읽은 책 :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지음, 왕학수 옮김, 2002년, (주) 신원문화사 펴냄 
 

2007/01/07 13:21 http://blog.hani.co.kr/noriteo/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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