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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가 할 포스터(1955- )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이 새로 한동안 자세히 뜯어읽게 될 책이다. 포스터는 현재 프린스턴대학에 재직중이며 저널 <옥토버>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는 <실재의 귀환>(경성대출판부, 2003)이 더 번역돼 있으며, 그가 편집한 책으로는 <반미학>(현대미학사, 2002)과 <시각과 시각성>(경성대출판부, 2004)가 따로 소개돼 있다. <옥토버>의 동료 편집자로서 그와 단짝을 이루는 로잘린드 크라우스에 관해서도 앞으로 다룰 예정인데, 그녀의 책으론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궁리, 2003)이 번역돼 있다(알라딘에는 '로잘린스 크라우스'로 표기돼 있는데,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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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Compulsive Beauty'(1995)이니까 직역하면 '강박적 아름다움'이다. 역자들은 보다 포괄적이면서 대중적인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은 기억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입에 자주 올리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제목이다. 여하튼 포스터의 의도는 모더니즘과 (네오)아방가르드 시기에 (그가 보기에) 부당하게 폄하된 초현실주의 미술을 다시 복권시키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프로이트적 해석'이란 서론 제목을 따르자면(이 제목은 원서에는 없는 것으로 역자들이 붙인 듯하다), 그 '새로운 해석'은 '프로이트적 해석'이다.
즉,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인데, 특히 포스터는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개념을 키워드로 삼아 초현실주의 회화를 읽어내고자 한다. 책의 1장을 그러한 전제와 전략을 해명하는 데 바쳐져 있다. 이 글에서는 서론에 국한하여 저자의 생각을 조금 따라가보려고 한다. 제목에 '오토마티즘'이 붙어 있는 만큼 주로 그에 관한 내용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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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의 기원: "1916년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생 디지에 신경정신클리닉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전쟁이 가짜라고 믿는 한 군인을 돌보았다. 그 군인은 부상자들이 분장을 한 사람들이고, 죽은 사람의 시체는 의대에서 빌려온 거라고 믿었다. 그는 젊은 시절 브르통의 큰 관심을 끌었다. 브르통은 그 군인에게서 쇼크로 인해 다른 현실 속으로 들어가버린 사람을 보았다. 그는 군인의 증세가 어쩐지 우리 현실에 대한 일종의 비판 같다고 생각했다."(7쪽) 아래 사진은 1916년 20살의 앙드레 브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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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기원이 되는 이 이야기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더 발전시키지 않았다. 이후에 초현실주의 운동사에서도 이 이야기는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포스터가 보기에 그것은 이 이야기가 브르통이 생각했던 초현실주의, 즉 '사랑과 해방의 운동'으로서의 초현실주의와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의 '공식적인' 역사는 자신의 '불쾌한' 기원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간과하거나 배제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포스터의 관심은 바로 그 '불쾌한 기원'이다.
"브르통이 젊은 시절 노이로제 환자 군인을 돌보면서 했던 생각은 트라우마의 쇼크, 죽음을 부르는 욕망, 강박반복 등과 관련된다. 나는 이 각도에서 초현실주의를 바라보려고 이 책을 썼다. 노이로제 환자 군인에 대해 브르통이 가졌던 젊은 시절의 생각은 따라서 초현실주의의 기원이자 내 책의 기원이기도 하다."(8쪽, 우리말 번역은 여러 곳에서 원문에 대한 강박적 부담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의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