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우박이 동시에 흩날리는 날이었다. 하얗고 하얗던 그 세상에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비가 내리고, 날이 맑고, 다시 비가 내리길 반복하더니 어느새 창밖은 초록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요란한 봄의 신고식을 통과하면서 온몸이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이 아직 제대로 펴지지 않은 듯하다. 그해 겨울을 어찌 지나왔는지, 나는 그 시간들을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지우고 싶은 문장처럼 새까맣게 칠해버렸나, 지난 겨울 무엇을 했는지 왜 떠오르는 것이 없을까. 제대로 펴지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몸이 아니라 기억인 것 같다.
요즈음의 나는 기억 속 세계를 거꾸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시간의 태엽을 아주 천천히 감으면, 내가 놓친 것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 지나친 것들에 대한 미안함, 섣불리 결정내린 것들에 대한 후회, 그런 것들을 마주볼 때면 자다가도 눈이 떠진다. 온몸의 마디마디마다 소리가 나는 것은 그 어느 시간에도 있지 못하는 내 몸의 비명일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사실을 이렇게 감각하는 것이 서글퍼 나는 더 깊고 작게 웅크린다. 내게 껍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다시금 기억의 세계로 들어간다. 여전히 알아보아야 할 내가 남았다.
한 발짝 떨어져 그 아이를 보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든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신발조차 제대로 신고 나오지 못한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여전히 내가 나를 구하지 못해 나는 그 겨울을 반복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맴도는 그 자리가,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이 돌아가게 될 곳이라면, 나는 두 손에 내가 쥘 수 있는 모든 봄의 씨앗을 들고 그 아이 곁으로 가겠다. 그렇게 내가 찾던 그 아이가 성장해 다시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기어코 만날 때까지, 매일을 살아내며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고 있지만 애타지 않는 마음으로, 기대하겠지만 서두르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