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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upahacca
  • 천문학이 발견한 반 고흐의 시간
  • 김정현
  • 21,600원 (10%1,200)
  • 2025-03-12
  • : 955


생활기록부 삼 년 내내 적어낸 꿈은 미술선생님이었다. 왜 그런 꿈을 꾸었더라. 다 지난 이야기. 교복을 입는 내내 만났던 미술 선생님들을 좋아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미술관 근처에도 가본 적 없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찰흙 조소 모델을 지원했을 때, 미술학원에는 입성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기 시작했던 것은 독립 아닌 독립을 시작한 후였다. 그때 본 작품들은 기억에 없다. 정처 없이 돌아다닌 탓에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얼얼한 감각만이 선명할 뿐이다.

 

잊고 지낸 그 기억들이 소환된 것은 이 책의 저자인 김정현의 멘트 때문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 한번 없이, 별을 보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감사를 전한다”. 저절로 나오는 부러움 섞인 탄식. 근래에 이리 부러운 사람이 또 있었나. 나는 김정현이 보는, 그러니까 별을 보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 이가 바라보는 어둠 속 빛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김정현의 글을 따라가면서 다시 교복을 입은 학생이 되었다. 과학과 미술 수업을 동시간에 듣는 헤르미온느가 된 기분이었다. 김정현이 <론강의 별밤>과 실제 별의 위치를 비교 분석한 것과 <별이 빛나는 밤>에 세 가지 가정을 세워 밤하늘을 재배치한 것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의 시선 덕에 나 역시 <밤의 카페테라스>, <론강의 별밤>, <별이 빛나는 밤> 속 그려진 별의 차이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빛을 그려내는 빈센트 옆으로 간다. 저는 오랜 기간 어둠 속에서 자랐어요. 그 탓에 어둠과 빛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했던 것이 결코 당연하지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의 제가 가진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혹 당신은 말할 수 없어 그리는 사람인가요. 저는 말할 수 없어 적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던 것을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어둠 속에서도 빛의 스펙트럼을 봅니다.

 

나는 빈센트가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한 장씩 넘기며, 그가 살아온 삼십칠 년의 시간을 살아본다. 미래를 상상할 수 없어, 끝내 자신에게 칼을 쑤셔 넣어야만 했던.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을 들여다볼 때면, 내 안의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특히, <아몬드 꽃>에는 그 밝은 색감에도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그렇게 빈센트의 영혼과 정신은 백여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내게 온다. 그가 남긴 다양한 스케치들과 다소 낯선 <구리 꽃병에 담긴 프리틸라리>, <오렌지를 든 어린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외젠 들라크루아의 <피에타>와 렘브란트의 <리자로의 부활>까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들은 그의 작품만이 아니다. 그것을 보는 나 역시 변하고, 변하고, 또다시 변한다.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향한 칼을 내려놓게 만든다.

 

내 안의 별을 향해 작은 소망을 쏘아올린다. 별이 빛나는 밤에 저를 데리러 와주세요. 그때까지 빛을 향해 걷고 또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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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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