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냐르는 말한다. 여성들은 변성은 겪지 않는다고. 유년기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그저 말을 하면 되고, 입을 벌리기만 하면 된다고. 작곡을 많이 한 여성이 드물었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빈약한 논거를 들이밀다니. 앞선 키냐르의 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애석할 지경이다. "늙지 않는 강물이 농후한 빛에 잠겨 영원한 상처처럼 흐른다"는 그의 문장에 얼마나 감탄했는데.
그의 주장으로 인해 오랜 시간 잊혀진 여성 작곡가들을 끄집어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연주하지 못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일찍 결혼해야 했으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바느질이나 강요받았던 여성 작곡가들. 그녀들의 한탄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힐데가르드 폰 빙엔, 프란체스카 카치니, 루이스 화렌크, 클라라 슈만, 에이미 체니 비취, 레베카 클라크, 에밀리 메리 헌트, 제인 그리어, 미리암 매크리에게 묻고 싶다-그럴수만 있다면-. 그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대과학에서 밝혀진 여성도 변성기를 겪는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주장에는 변성기로 목소리를 잃어가는 남성에 대한 지나친-정말이지 과할 정도로-애틋함이 묻어있다. 특히, 신체적 변화의 "허물벗기"에 있어 남성은 13세 혹은 14세 무렵의 '변성'인 반면, 여성은 45세~50세가 되서서야 '폐경'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은 쓴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정말 그럴까.
키냐르는 남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목소리가 암울해진 자이며, 그래서 자신의 성대에서 사라진 가녀린 고음의 목소리를 찾아 죽을 때까지 헤매는 자라고. 그렇다면 여성은, 여성은 무엇을 찾아 헤매는 자인가.
그간 남성으로 대표되었던 인간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울부짖음으로 시작되는 소나타라면, 여성의 목소리는, 여성의 울부짖음은 몸 안에 숨겨져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리하여 오로지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연주될 수 없는 무언가다. 내게 여성은 그 무언가가 과연 자신에게 무엇인지 평생에 걸쳐 찾아 헤매는 자이다.
남성의 목소리가 시간 안에서 울린다면, 여성의 목소리는 또 다른 여성의 몸 안에서 울린다. 울리고 울리는 울음. 그 울음은 시간을 뛰어넘는다.
이린아의 시구를 빌려,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밤에만 우물가를 찾는 여인은 짐승의 이빨 사이로 울어본 적이 있어
울음이란 짐승의 이빨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고 다물어지지 않도록 버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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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북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