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님의 일기장에 쓰여진 글과 사진들을 보면서 어디 털어놓을 곳이 없었구나, 쓰지 않고서는, 그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살기 위해 토해낸 것들, 토해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들. 한 편의 편지와 같은 글과 수많은 그림을 쓰고 그리며 버텨온 시은님을 떠올렸다.
굳지 않는 바다가 된 것 같다는 그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가 그린 <엉킨 진물>을 다시 보았다. 책에 수록된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유달리 그 그림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굳었다가 흐르고, 흐르다가 다시 굳고, 그렇게 생긴 피딱지 아래의 노란 진물. 검게 착색되어가는 것들과 그럼에도 여전히 새하얀 것들의 엉킴.
그 엉킴 속에서 잃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찾아야 할 것들만 기억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