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 나는 뾰족한 눈의 소녀가 되었다가, 주름진 해마가 되었다가, 시리도록 파아란 바다가 되었다가, 외딴 섬이 되었다가, 다시 내가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어느 한 곳을 응시하지 못하고, 허공에서조차 길을 잃는 여자를 떠올렸다. 너무 말라버린 여자. 나는 그 여자가 낳은 자식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여자에게도 어항의 물을 갈아주는 딸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슬픔은 어항의 물이 쏟아지듯 흘렀다.
나는 밤새 몸을 뒤척였다.
보고 싶은 이는 끝내 나오지 않고,
애꿎은 귀신이 나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바다를 삼킨 듯하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호스를 빼내야지.
수많은 낱말들이 길어올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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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온북스로부터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