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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upahacca
  • 투계
  •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 13,500원 (10%750)
  • 2024-08-09
  • : 1,429
깨어있는 것들을 깨부시는 사회다. 물어뜯지 못해 안달난 인간들이 있다. 물어뜯긴 사람들의 상처는 다른 누군가를 물어뜯는데 재사용된다. 햄스터가 제 새끼를 뜯어먹는다. 생쥐같은 아기들이 메르세데스를-그러니까, 여성을-마구 뜯어먹는다. 두 장면이 맞물린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이제 진짜로 살아 있는 것들이 죽은 것들보다 무섭다. 살아있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여자로 사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악몽은 깨어있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다.

‘원래’, ‘자연스럽게’를 학습하게 만들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시도들 앞에서 ‘하지만 하지 않았다’로 결론짓게 만드는 사회에서, 우리는 울부짖어야 한다. ‘가서 울어야지’, ‘소리 내어 울어야지’라고 속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어야 한다. 그 생생한 울부짖음이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서로의 처절한 고통에 기반한 믿음, 우리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성스러움을 표방하는 껍데기들이 싸지르는 단어에서는 똥 맛이 난다. 여성에게 신은 없다. 내 앞에 피 흘리는 여성만이 유일한 믿음이 된다. 우리는 마르타인 동시에 마리아다.

정신병원과도 같은 식탁과 침묵, 꾸역꾸역 삼켜지는 뭉텅이들. 그 식탁에 앉아있던 나는 다시금 목이 막히고, 연거푸 물을 들이켠다.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악몽 속에 내 일부가 남아있구나. 내 일부가 거기 살고 있으니,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빈대를 떠올린다. 곡예사와 달리 빈대는 뒷면으로도, 옆으로도 기어갈 수 있지. 곡예사인줄 알았던 나는 빈대처럼 현실과 현실 반대편을 둘 다 보고 만다. 무엇이 현실이지. 여전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모두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은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벽과 커튼에 의해 가려져 있을테니까.

현재의 현실. 한때 국가가 장려했던 임신중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출산이라는 성스러운 단어 아래 가로막힌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 아니였기에,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럽게 아무일 없었던 듯 흘러간다. 성스러움을 표방한 껍데기들은 입으로 오물을 싸지를 동안에, 죽어가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영혼이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인가요. 나는 선택한 사람인가요, 선택된 사람인가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가요.

미래의 내일, 만일 세상이 여성을 먼저 죽인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미가 먼저 딸을 죽이는 것은 선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악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그건 누가 결정하나요. 죽이고 죽어가는 장면을 관망하는 이들은 커튼 안에도, 커튼 밖에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이 아닐지도. 어쩌면 이것은 미래가 아닐지도.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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