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소설 『죽음』을 다시 검토해 보자.
소설 『죽음』에서 정성열은 “여자의 정조는 반드시 최초의 정식혼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가 어떠한 사람을 사랑하든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변치만 않으면 그것이 정조입니다. 그뿐 아니라 철학적으로 본다면 편협한 정조라는 것은 문제입니다.”라고 자유연애 사상을 제시한다. 이는 1930년대에 ‘정조가 취미라’는 나혜석의 주장을 선취한다. 이에 대해 주인공 최영옥이 “그것은 여자를 인격으로 보지 않고 기계로 보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한다. 지금까지 문화사 연구는 이에 대해 자유연애론에 대한 전근대적인 거부의 혐의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볼 때 최영옥의 답변은 자유연애 담론이 ‘인간성 정식’을 취하지 않고 ‘자기애의 원리’를 선택할 때 여성을 도덕법칙을 최상준칙으로 삼은 인격이 아니라 자기애의 원리에 속박된 기계로 만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용운의 삶과 사상의 일관된 근대지향성으로 볼 때 자유정조는 전근대적 ‘반려애’가 아니라 칸트의 ‘인간성 정식’에 근거를 둔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한 것이다.
소설 『죽음』에서 최영옥이 ‘인격’ 대 ‘기계’를 대립시키는 것은 선의지를 따르는 초월(반성)적 자아와 자기애의 원리를 따르는 현상적 자아의 대립을 형상화하는 표현이었다. 그것이 『님의 침묵』에서 시적인 표현을 얻을 때 초월적 자아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정조’인 ‘자유정조’로 나아가는 시 「자유정조」가 탄생한 것이다. 현상적 자아가 스스로를 초월하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 “님을 기다리면서/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는 싯구는 이후 ‘자기애의 원리’를 거부하며 초월적 자아로서 존재 역량을 길러낸 한용운의 중핵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5장 결론
한용운의 시는 문학의 자율성의 원리에 따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근래의 문화사 연구는 근대성의 원리에 근거해 ‘연애의 시대’에 나온 기성세대의 반명제로 가치화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화사 연구의 비판적 접근에 대한 반론은 “식민주의의 현실적인 동시대인”(디페시 차크라바르티)으로서 가다듬어온 한용운의 사상적 실천 속에 이미 기입되어 있었으며 이는 시 「인과율」, 「자유정조」 등에서 텍스트화된다.
이번 연구는 근대인 한용운이 칸트-량치차오의 근대적 모색을 경유하여 그것의 한계 극복을 당시 주류적이던 ‘사랑’의 문화표상과의 충돌 속에서 형상화해냈음을 문화사 연구의 직접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두 편의 시 「인과율」, 「자유정조」를 모델로 하여 제시하였다. 앞으로 이번 연구를 발판으로 하여 『님의 침묵』 시집 전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