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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noel
  • [전자책] [세트] [BL] 단밤술래 (외전 포함) (...
  • 채팔이
  • 20,300원 (1,010)
  • 2021-12-10
  • : 78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기억을 잃고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채팔이 작가의 <단밤술래>를 읽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과 시간의 무게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도한과 윤담의 이야기에 목 언저리가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사랑이 있을까. 이렇게 서로만이 존재했던 세계가 있을까. 이들처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천년을 넘어서 현재에 둘이 만난 건 길고 긴 오해와 기다림을 매듭짓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도한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얻고자 했던 것, 그 이전에 윤담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얻고자 했던 것, 그 역시도 서로였을 뿐이다. 보름달이 뜬 밤 시작되었던 사부의 술래잡기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발걸음은 사부의 힘을 두려워한 신장들에 의해 멀어져만 갔고 결국 도깨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거기에 있었지만 이들 앞에는 ‘사명’이라는 강이 놓여져 있었다. 천년 전 ‘사부’와 ‘뫼’의 세계는 서로밖에 없었음에도 사명이 그어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외롭고 외로운 시간을 홀로 견뎌야 했으며 정인을 곁에 두고도 오래도록 그를 찾아 헤매었으니 기다리고 찾아다니는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 고통.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정인...


이도한과 윤담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을 보며 누군가 내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다. 숨이 막혔다. 서로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헤어져야 했고, 또 오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파멸하고야 말았던 둘을 보며 나는 목놓아 울어야 했다. 꼭 돌아오겠다고 약조를 했건만 무신정변에 휘말려 떠돌아 다닌 세월은 10년을 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끼고 애정을 쏟아 길렀던 어린 도깨비를 어두운 동굴에 홀로 두고 떠나와야 했던 사부는 기억을 잃은 채 영문도 모르면서 마음 아파해야 했다. 그리고 사부와 뫼의 인연 이전으로 더 거슬러 그들의 근원을 만났을 때에는 윤담과 이도한의 운명에 압도당하는 듯했다.


사명

귀왕의 사명

귀왕의 사부된 자의 사명


눈이 밝았던 사부이지만 그 역시도 겨우 스물을 넘긴 청년이었을 뿐이었다는 것. 그런 그가 '귀왕의 사부'로 점지된 사명에 따라 홀로 동굴에서 귀왕을 귀왕으로서 가르치고 키웠다. 그에게서 세상을 통달한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사부도 그저 외로운 영혼이었을 뿐이다. 눈이 밝아 귀의 세계를 아는 자를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기기나 했을까. 윤신홍의 자제가 겪은 외로움은 어린 도깨비를 키우면서 잊혀져갔다. 귀왕의 사명을 타고 태어난 도깨비를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을 주며 키웠고, 그의 맑은 영혼을 사랑했다. 사부는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기 전 도리천의 신이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아이의 영혼을 구제할 수 없다는 모순에 아이의 영혼을 직접 구하고 스스로 땅으로 내려왔다. 


사부는 자신에게 허락된 생의 끝에서 뫼를 위한 내기를 건다. 내기에 따라 뫼는 사부에 대한 기억을 잃고 그의 영혼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다 어긋난 인연은 바로잡기 위해 새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운명의 실타래는 어지러이 엉켜버렸지만 그것을 푸는 이도 뫼와 사부이자 이도한과 윤담이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타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천년 전 그들을 얽매어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이제 평범한 삶을 얻어 살아가던 둘이 다시 얽히게 되었던 것은 운명일 따름이다. ‘신’으로서 부여받은 사명, 눈이 밝아 외로웠던 귀왕의 사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윤담. 그리고 사명도 모두 잊고 다시 태어나 평범하게 큰 이도한. 


시간의 흐름에서 과거에 매여 있을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운명을 선택하는 것 역시 이도한과 윤담의 일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모두가 떠나고

그 혼자만이 남아 정체된 것 같았다. 

문득 윤담은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아졌다.

<단밤술래> 4권 중 발췌



그때와는 다른 선택, 두 번 다시 어둡고 습한 동굴에 너를 혼자 두는 짓은 절대로 안 한다고 말하던 윤담의 모든 선택이 현대의 이도한과 윤담이 겪은 회한의 과거를 보듬는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윤담과 이도한이, 그들의 모든 시간의 감정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수백, 수천 번 망각초를 먹었다 하여도 당신을 기억해낼 것이라 했던 이도한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윤담을, 이도한은 다시 자신에게 새겼다.


그토록 자신만을 바라던 아이가,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 미쳐가버린 뫼도, 좋아한다고 수없이 말하기에 거침없던 이도한의 존재가 다시 윤담 앞에 온전해졌을 때 느낀 카타르시스는 감히 형언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깊이만큼 미래의 감동이 존재한다.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이도한은 윤담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과거를 다 잊었어도 그들은 다시 사랑하고 말았다. 이것을 운명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운명일까. 이들은 이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반인반귀로서 영원을 살며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장대한 이야기의 끝은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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