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현대미국소설은 처음 읽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은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교 성적을 잘 내고,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에 빈틈없는 토론실력까지 겸비한다면 세상은 두려울 것 없는 장소일 게 뻔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르쳐 준 것이 아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아들은 배울 수 없는 것을 강조하는 아버지를 거부했다.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과의 달콤한 불장난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서 팬티를 벗을까 말까를 고민할 때,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청년들이 역사의 불장난에 희생되어 갔다. 같은 불장난이지만 하나는 흰색의 정액을 다른 하나는 선연한 붉은색의 피를 뿜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인식 속에서만 두려워할 일일 뿐 실재의 것으로 잡힐 리 만무하다.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마커스는 아버지의 집착을 피해 로버트트리트 대학에서 와인스버그로 편입했다. 첫 번째 엑소더스였다. 이제 법학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곁들여 찐한 연애를 소스삼아 뿌리면 금상첨화의 대학생활이 될 것이다. 마커스는 자신이 상정해 놓은 정형화된 대학생활을 꿈꾸며 와인스버그의 홍보책자의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을 구입해 그대로 코디했다. 매우 상식적이고 인과관계가 뚜렷하며 자신이 읽은 책에서와 같은 세상이 되어주길 바라며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가 너무나 많았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그 존재가 권위 있는 사람 즉, 나를 세상에 내놓게 한 장본인인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또래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같은 기숙사 윗 침대를 쓰는 ‘플러서’는 밤마다 베토벤을 틀거나 멕베스를 암송하면서 마커스의 잠을 방해한다. 마커스는 참다못해 그의 레코드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닭의)똥꾸멍을 베어 열고 손을 쿡 쑤셔 넣은 다음 내장을 잡아 끄집어내라. 구역질이 나올 만큼 역겨워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커스의 아버지는 유대인 정육점을 운영했다.)
두 번째 엑소더스다. 엘윈 아이어스 2세 역시 위쪽 침대의 동급생이었다. “엘윈은 완벽한 룸메이트예요. 조용하고, 사려 깊고, 깨끗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요.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요.” 마커스는 자신의 여자를 ‘씨발년’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엘윈을 저런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커스는 엘윈을 피해 혼자 살기로 결심한다. 의도치 않게 마커스는 코드웰 과장의 말대로 눈앞에 장애가 있으면 그것을 피해 가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마커스는 엘윈을 이해하지 못했고, 올리비아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삶 마지막의 큰 주제라고 말한다. 아버지, 여자, 또래집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찌 한반도에 일어나는 전쟁을 이해할 수 있으랴. 전쟁은 마커스의 운명 뒤에서 커다랗고 빨간 혀를 날름 거린다.
마커스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수 있고, 맘에 들지 않는 룸메이트를 피해 방을 옮길 수 있지만 한반도의 마력에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또 하나의 전쟁이다. 그녀는 알콜중독과 자살미수의 이력이 있는 매력적인 상류층 여성이다. 마커스는 그녀가 맘에 들어 데이트를 신청했고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녀의 오럴섹스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충격적인 과거 이력을 알자 혼란에 빠져든다. 플러서와 엘윈은 피하면 그만이었지만 올리비아는 그렇지 않았다. 마커스에게 있어 그녀는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이었던 것이다. 결코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 향방을 다른 곳에 옮겨 놓을 공산이 큰 존재지만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자신 이외의 다른 남자의 것을 빨아주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그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올리비아는 전쟁이었고, 청춘이었다.
『울분』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마커스라는 한 청춘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말미 참혹한 전쟁과 와인스버그의 소요사태 일명 “와인스버그 대학의 하얀 팬티 습격 사건”으로 광포한 이미지가 구현되기 이전에 화약을 밀도감 있게 쟁여놓듯 마커스의 울분을 압축표현한다. 울분이 생겨나는 과정과 그것이 단 한순간에 파괴로 흘러가는 과정은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이것이 청춘이라는 이름의 울분이란 말인가. 이 청춘을 횡단해본 이들은 안다. 발을 헛디디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불가항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래서 우리 독자들은 마커스와 함께 처음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나 이후 그가 왜 그토록 미쳐가면서 까지 그토록 아들을 과보호 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다. 나의 순수, 나의 폭발, 나의 정직, 내 성인기의 진정한 첫해이자 내 생의 마지막 해의 그 극단적으로 짧았던 행복에 관해 이야기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죽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문자,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온 문장.
“엄마! 아버지! 올리비아! 나는 당신들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서 해명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시도해도 아무런 응답을 끌어낼 수 없다. 내 정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신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깊디 깊은 슬픔.“
종교란 믿음마저 없는 청춘의 지독한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