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조질 때는
편먹고 한 아해를 어찌 하였을 때,
그리고 치고 박고 싸웠을 때.
그러나 모친이 우리를 조지는 때는 실로 다양하였으나
그 중 가장 크게 진노하실 때는 바로 거짓말 하다가 들켰을 때였다.
모친은 솔직하게 말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노라 하시지만
익히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을 경험한 바
우리들은 모친 앞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주 거짓말을 하고 했다.
그러나 대게의 엄마라는 존재들이 그러하듯.
자식새끼들의 뻥치시네는 귀신같이 알아내신다.
더구나 기습 질문 시 이 의심의 눈초리에서 피해나갈 길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미 준비된 거짓말일 경우 사전 연습과 리허설을 통해 형제자매들끼리 서로 도와 가능하기도.)
만약 거짓말 하다가 발각이 되면
그 즉시 모친은 물었다.
‘몇 대 맞을래?
이때, 오... 맞는 대수의 자유를 하면서
‘한 대요!’ 이 지랄을 했다가는 큰일 난다.
지가 한 잘못에 비해 한 대라니. 말도 안 되는거지.
해서 이때는 세 대요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면 모친 그래? 하면서 다섯 대를 때리신다.
모친은 아버지와 달리 마음이 약하지 아니하셨다.
해서 우리에게 앞으로나란히를 하게 한 다음
(손가락이 부러진다는 이유였음. 이건 부친도 마찬가지.)
정확하게 박자 맞추고 강도 똑같이 다섯 대를 딱.딱.딱.딱.딱. 치신다.
어느 날 내가 도자기를 홀라당 처 깨 버렸다.
즉시 형제자매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오공본드 오초본드 기타 등속을 이용해서
산산이 부서진 조각 들이여를 기똥차게 맞추었다.
우리가 봐도 감탄스러울 지경.
해서 그대로 있던 자리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런데 이게 좀 선대 어르신이 가보로 남긴 이조백자스러운 무언가였나보다.
난 그냥 옛날 술병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이것이 돌았는지 아니면 조상님의 준엄하신 무언가인지
경고도 없이 팍삭 하고 무너졌다.
것도 모친 떡하니 거실서 TV보시는데 (TV옆에 이 백자 있었다.)
모친, 처음에는 아니 이런 변고가 있나 하며 화들짝 놀라셨으나
이내 칠해 칠해 본드질스러운 것을 발견.
이미 깨진 것을 애새끼들이 다시 처 붙여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서 모친 우리들을 불러 차례로 취조를 하기 시작했다.
‘니가 깨었느냐?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니가 깨었느냐?’
‘아니옵니다.’
마지막을 내 차례
‘그럼 너구나!’
‘어마마마 저는 죽어도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진짜 엄창..이 아니고 아무튼 엄청 아니했나이다’
모친, 대번 눈치 까셨다.
원래 거짓말을 하는 자 말이 길게 마련이다.
거기다 당황해서 엄창 뭐 이런 거 까지 했으니.
해서 다시 물으셨다.
‘넌 것 같은데?’
‘전 아닙니다. 절대로요’
모친, 휴~ 하시더니 한 번 더 묻는다.
‘진짜 아니란 말이지?’
‘진짜 아니에요’
아, 그냥 했다고 할 것을 그러면 예의 그 다섯 대의 강도가 그 정도였을 것을
이 날 아주 모친 있는 힘 없는 힘 다 실어 일명 사랑의 매를 드셨다.
진짜 아주 뒤지게 아팠다.
보통은 앞으로 나란히 한 다음 다 맞고 나서 주저앉는데
이 날은 한 대 맞고 주저앉고 엉덩이 만지고 좀 처 울고 또 다시 하고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울먹울먹 하는 나에게 모친 안아 주면서 큰 소리로 따라 하란다.
‘다시는’
‘다시는’
‘거짓말을’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 말 자체가 거짓말이었지만 어쨌건 하라니까 시킨 대로 했다.
그리고 나도 좀 억울한 무언가가 있었다.
강도가 너무 쌔셨던거지. 모친 말로는 세 번의 기회를 주었다 하시지만
거짓말 하는 입장에서는 캐물으면 캐물을수록 기회가 아닌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해서 나도 모친께 따라하라고 했다.
‘어린이를’
모친 좀 어이가 없었는지 ‘이린이뤄얼’ 하신다.
‘몽둥이로’
‘몽둥이로’
‘너무 쌔게 두들겨 패지 않습니다.’
‘너무 쌔게.. 아이고 미안하다 내 새끼’
그리고 모친과 나 얼싸안고 울었다.
난 궁뎅이가 아파서, 모친은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그날 밤 모친 나 자는 방에 들어와 엉덩이 벗기고 약 발라주는 아름다운 모습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밤 9시만 되면 너무나 잠이 쏟아지는지라 모친은 디리디리 주무시고
대신 형제자매들이 이 역할을 해 주었다.
발라주면서 서로 서로 그랬다.
‘야, 몸에서 좀 없어졌으면 하는 부분이 엉덩이 아니니?
‘그러게 꼴보기 싫게 이런 건 왜 있나 몰라’
바보 같은 것들. 그나마 엉덩이가 지방이 많아서 맞으면 덜 아프다.
그 강도로 다른 곳을 맞아봐라 죽지 죽어.
아무튼 그날의 조짐 이후.
모친 때 밀어주다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내 푸르딩딩한 엉덩이 멍 보고 좀 깨달은 바 있으신지. 다시는 그 강도로 때리지 아니하셨다. 그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대신 다섯 대 때리고 말로 사람 때려 잡으사 아싸리 소녀를 한 대 치옵소서 했지.
요즘에는 애들을 절대 안 때린다더만
우리 때는 그랬다.
잘못하면 처 맞았고, 또 잘들 때리셨다.
아동 폭력에 대한 계념도 없었고, 다른 집구석 사정은 몰라도 우리 집구석은 아동폭력까진 아니었다.
폭력 하면 오히려 형제자매들간의 폭행시비가 더 큰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암튼 애새끼들은 자주 조짐을 당하고 처 울고
엄마들은 한 손으로는 어깨를, 한 손으로는 요리조리 피하는 애새끼의 궁뎅이를 찰싹 때리면서 ‘이 새끼가 그래도 끝까지..’ 했더랬다.
저 교육법이 옳았는지 아니면 절대 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말로 타일러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