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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d Blows
  나비 효과 (The Butterfly Effect, 2004)   일기장의 Metaphor

 

 

<나비효과>라는 제목으로 카오스 이론을 슬쩍 건드리고, 구태여 교화적인 측면까지 내심 묶어 버릴려고 했던 제작관계측의 잠재적인 의도에 속는셈치더라도, 여전히 장르의 테두리에 갇혀 오직 극적 반전의 그 순간만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tz)나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같은 이공학의 전문용어까지 들먹거리며 세세한 오류들까지도 헐뜯어야 하는 비평가들의 이아러니한 직업정신을 지켜보면서 영화 <나비효과>의 '시간성'을 언급해 본다.

 


 
영화 초반 에반의 유년시절 이야기에서 파악되는 가장 큰 갈등구조는 '기억장애'관한 것이다. 어린 시절 고통의 체험이 기억 속에서 지속된다는 귀스도르프(George Gusdorf)의 견해와는 다르게 에반은 충격과 반동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관객의 Reading time 기준에서, 이미 수많은 반전을 경험해 왔던 관객들은 어린 주인공에게 결핍되어 있는 요소가 네러티브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련하게 추측하게 된다.

 

 

영화 <메멘토>에서 심각한 기억장애를 겪고 있던 주인공이 전후관계의 추론을 통해 사건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몸에 문신을 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은, 주인공이 부지런하게 쓰고 있는 '일기장'이라는 아이콘이다.

 

 

 

 

'일기'는 글의 저자와 독자가 동일인이다. 자칫하면 저자가 죽음으로 이를 수도 있는 치열한 포스트모던의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지라도, 이항일체의 상태에서는 지적 각성이 수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일기'라는 장르는 독자나 관객들에게 1인칭시점으로 다가가는 리얼리티의 허구적 액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기장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고 있으며 영화는 '시간성'에 대한 복잡하고 말장난 같은 철학적 담론들을 피해기 위해 '일기장'을 통해 '시간의 규정'을 고정시키고 있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비가역적 시간의 개념은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다.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미 예전에 기록되었던 종결되지 못한 사건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의 낭독에 존재한다. 기억이 뇌 속에 머물러 있다는 유물론자 리보(Thodule Armand Ribot)의 견해를 따르자면 영화의 주인공 에반은 일기장을 통해 뇌세포 속에 잠재된 기억을 유추시킨다.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이동, 새로운 사건 구조를 창조하는 하이퍼텍스트의 연결고리는 개인적 글쓰기의 가장 최소적 유형인 일기장에 놓여있다.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의 Nunc Stans(머무는 현재의 개념)는 과거는 이미 실행되어 버렸기에 더 이상 지금에 존재할 수 없지만, 현재에 뭔가가 머물러있어 우리에게 과거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현재에 머문 과거의 잔재로 '일기장'을 설정했다. (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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