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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림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림이 좋아서일 수도, 특정 작품이나 화가에 매료되어 그 흔적을 쫓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런데 오백여 년의 서양미술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림을 왜 보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술사야말로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이기 때문이라고. 153쪽
스페인 전문해설사가 들려주는 스페인, <예술로 읽는 스페인>을 연휴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유럽 3대 미술관으로 루브르, 우피치 그리고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 해당된다는데 안타깝게도 프라도 미술관만은 아직 못가봤다. 그래서 어쩌면 더 기대도 컸고, 흥미롭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위의 발췌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예술로 출발한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미술작품들을 설명하기 보다는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이슬람과 가톨릭 영향권에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내전에 의한 아픔이 어떻게 표현되고 집시들의 슬픔은 또 어떻게 예술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읽는 동안 너튜브를 통해 구슬픈 기타연주를 듣기도하고, 플라멩코 공연을 감상하기도 했다. 특히 가우디의 이야기는 최근 구매한 가우디 평전을 옆에 두고 동시에 읽다보니 강연을 듣는 듯한 기분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미치광이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진실을 밝혀 줄 것이다.” 72쪽
시간이 밝혀준 바에 따르면 가우디는 천재, 그것도 신앙심과 자신만의 건축철학이 확고했던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관련된 내용만 조금 알고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카사 건축물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카사 밀라’의 경우 풍자화가 나올만큼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비전문가인 내게는 물결이 흐르듯 곡선으로 이루어진 외관과 투박한듯 자연스러운 옥상까지 멋있게만 보였다. 물론 편의에 따라 내부를 개조한 건축주의 아내 로사리오의 입장도 납득이 가긴 했다. 집의 가장 큰 효용은 ‘편의와 안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우디가 설계한 원상태의 집을 개조하진 않았을 것 같다. 가우디의 ‘가스등’에 새겨진 에르메스 문양이나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벤치 그리고 깨어진 컵이나 그릇을 활용하여 제작된 부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픈 충동도 들었다. 물론 가우디하면 빼놓을 수 파사드의 성가정 조각과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이름이 조각된 스테인드글라스도 아이와 함께 꼭 보고 싶었다.
드디어 미술관과 회화작품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오면, 저자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내게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초판본 표지로 각인되어 있는 그림인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작가와 작품명은 몰라도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주의 오른편에는 왜소증을 지닌 두 인물이 있다. 독일 출신의 마리 바르볼라와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로, 이들은 궁정에서 살면서 왕족과 귀족을 위한 여흥을 맡거나 어린 왕자와 공주의 곁을 지키며 수발을 들었다. (…)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달랐다.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잘 드러나지 않던 이들을, 궁의 떳떳한 구성원으로서 담담하게, 차별 없이 그린 것이다. 185쪽
이 작품 뿐 아니라 <브레다의 항복> 을 보더라도 전쟁의 승리만큼이나 패자에 대한 존중을 보면, 벨라스케스의 시선이 소외되어 있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도 머물렀음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설명을 들어서 알게 되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있어서도 새로이 알게된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누군가에게 특정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론에 이르러 화자와 청자의 의견이 같아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대화가 있을까. 스페인을, 스페인의 예술을 아름다운 대화로 마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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