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다
존 비게닛의 <침묵>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침묵은 비교적 단순했다. 소음이 거의 폭력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잠시 귀를 닫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심신을 정화하는 명상적인 시간 같은 것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침묵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포용의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침묵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와 사회, 종교와 예술, 고통과 폭력의 자리에서 침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교정시설에서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훈육할 때 때리기보다는 혼자 방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고 쉽게 말한다. 나 역시 그런 방식이 비교적 평화로운 훈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침묵과 고립이 사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퇴행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강요된 고립과 침묵은 절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저자가 청소년기에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머물렀던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말을 삼가고 침묵하는 생활을 경험했지만, 사제들의 모습이나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사제의 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침묵 자체가 어딘가 불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와닿았다. 침묵은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잠시 자신의 생각을 멈춘다. 나는 독서를 저자와 핑퐁처럼 생각을 주고받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깊이 몰입한다는 것은 한동안 나의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겪은 충격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그 몰입의 경험마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영화와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현실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여성들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깊은 바다에서 고래들의 의사소통이 방해받는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 아팠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고래들이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고래들이 혼자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침묵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더 많은 외로운 고래들이 아닐까.‘(223쪽)라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침묵이 더 이상 고요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침묵에도 지켜야 할 침묵과 깨뜨려야 할 침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침묵은 필요하지만, 처벌을 위한 침묵, 학살과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침묵, 상대의 침묵을 강제로 끊어내기 위한 고문은 결코 같은 의미의 침묵일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침묵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침묵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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