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 여름.✉️
오래 전, 그러니까 출산은 물론 결혼도 하기 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사랑에 실패한 슬픈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야기란 모름지기 결말도 중요하지만 장면 장면에 등장하는 말, 그 말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채리티는 감수성을 너무 쓰지 않아 퇴화해버린 듯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니의 애정보다도 그의 말에 더 놀라고 감동했다. 206쪽
마치 나의 그런 마음에 화답하듯, 위의 문장을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그때는 분명 슬픈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읽어보니 결말이 그렇게 또 불행하게만 느껴지지도 않았다. 왜냐면 채리티의 나이가 아직 너무 어렸고, 어리다는 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채리티가 근무했던 곳, 현대의 풀타임 근무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식으로 임명된 마을 도서관의 사서였으며, 정규 교육도, 어떤 실습이나 자격없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리티, 너를 산에서 데려온 게 로열 씨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거라.” 53쪽
산에서 태어난 채리티를 가난하고 작긴 해도 어쨌거나 ‘산골 농민들의 야만적일 정도의 빈곤에 견줄 만한 것은 없(287쪽)’는 집에서 길러졌다. 그랬기 때문에 초반에는 지나치게 당돌하게 느껴졌다. 사실 초반에는 내가 이토록 나이를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숙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산에서 데려온’ 사람이 로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이 서글퍼지게 된 것은 내가 만약 채리티를 작품의 한 소녀, 사랑에 빠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철없이 소녀가 아니라 ‘내가 낳은 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감상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서두에 발췌한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채리티가 자란 마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그런 삶에 익숙해질 뿐(145쪽 참조)’인 곳에서 달콤한 말로, 그것도 당당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높여주는 하니와 같은 이성을 만났을 때 반하지 않을 여성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로열의 입장에서 하니와 채리티의 만남은 시작부터가 실패한 관계였다. 채리티 역시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기에 ‘결혼’이란 단어를 꺼낼 수도 없었고, 그를 기다리는 시간 온갖 의심과 고통에 시달려하면서도 막상 둘만 함께할 때는 그 모든 질문을 삼켜버린다. 신기하게도 이런 이성문제는 ‘여름’이 집필되었던 시대 이전이나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고전, 고전, 고전이라고 하는것일테다.
🏔️“산으로 가겠어. 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거야.” 전에는 그런 말을 하더라도 진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곰곰이 따져본 지금,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185쪽
여러분이 사는 고장에 유익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곳에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221쪽
쓰라린 시련앞에 무너져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채리티는 상황만 다를 뿐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졌거나, 혹은 되돌아가는 이유가 된다. 채리티에게 하려던 말은 아니었겠지만 청중들을 향해 변호사 로열의 연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소설 역시 6월부터 그리고 8월의 끝자락에 일어난 일들로 어느 때보다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여름, 로열의 저말이 힘이되어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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