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스본행 야간열차
Nachtzug nach Lissabon (2004년)
사실 그레고리우스는 가게에 아무도 없기를 바랐다. 포르투갈어의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오직 한 가지 이유로 여기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어쩌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여기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견디기엔 혼자인 편이 나왔다.
스위스 베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다리에서 떨어질 것처럼 서 있던 한 여자와 마주친다. 비오는 날 아침, 결코 스쳐지나갈 인연은 아닐 것 같은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자비로 출판했으리라 판단되는 한 책의 저자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오래 전 영화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야기의 중심에 그레고리우스와 그 여성과의 조우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원작 소설을 마주하고 보니 개인적으론 그 여성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어철학자 파스칼 메르시어가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를 통해 들려주는 그가 내린 정의들에 시선이 옮겨졌다. 늘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오가던 그레고리우스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지위와 명석하고 비범한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불행했던 아마데우가 잠잘 시간마저 부족할 만큼 읽고 써내려가며 얻은 것은 다음과 같다.
중요한 것은 아주 단순했다. 문법이든 표현 양식이든 고전의 외진 구석까지 모두 알고 표현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를 아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24쪽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30쪽
그는 잡은 도둑을 놓아준 경찰에 관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대답했다. “우린 함께 웃었어요. 그러고 나니 그를 가두어둘 수 없었어요.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더라고요.” 278쪽
아이들에게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은 아버지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자신의 결점과 무지, 실수와 비겁함이 아이들의 영혼에 새겨질 것이라는 생각은 또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405쪽
그러므로 내가 하려던 질문은 한달의 길이가 아니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였다. 한 달이 완전히 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연 언제인가? 423쪽
지독한 근시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오래된 불명증으로 새벽에 전화로 안과의사와 체스를 두는 그레고리우스. 진료를 마친 뒤 서재로 가서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쓰고서도 여전히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마리앙의 주방 식탁에서 글을 썼던 아마데우. 이렇게 텍스트로 묘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중심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른다. 피아노를 치던 손은 잔혹한 고문으로 찻잔을 제대로 쥘 수도 없고, 누군가는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떠난 사람과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함께 떠났으나 혼자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보니 이 책에 매료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낀다. 600여페이지의 소설이 끝난 후 차분히 내게 묻는다. 나는 떠나는 것도, 또 돌아와야 할 때를 잘 아는 사람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