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성냥을 켜다
  • 의미들
  • 수잰 스캔런
  • 19,800원 (10%1,100)
  • 2025-10-27
  • : 3,210
[리뷰대회]

수잔 스캔런의 <의미들>의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다. 먼저 읽은 독자의 친절함을 걸치고 저자가 직접 쓴 예상 독자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쓸 때, 책을 읽으며 내가 이 사람일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내가 패트릭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건 나야,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420-421쪽

‘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우울감을 가지고 있고, 외로움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며 관계에 어려움을 가질 뿐 아니라 소중한 누군가를 잃거나 잃어가는 중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더이상 살아가도록 놔둘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경험했거나 그런 충동이 일어날 것 같은 슬픔을 느꼈던 사람들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차마 병리적으로 정신의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꽤 긴 시간 입원하거나 내원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 가령 열 살 이전에 엄마를 사별한 일,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말을 하고 걸어다니 던 시절부터 이미 엄마는 ‘암환자’였고,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그렇게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의 자리를 채운 사람이 안타깝게도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딸에게 달려간 아빠에게 ‘나를 그곳에 버리고 갔다’라며 피해자의 위치마저 질투하는 새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 어떤 경우에라도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때로 혹은 그보다 자주 언성을 높이며 싸우더라도 곁에 머물며 화를 낸 후에는 반드시 안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자리가 비워진 후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그다지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일 수 없다고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저자가 직접 표현한 것처럼 그런 상실과, 정신병동에서 스스로 체결한 수동적인 상황에서 결국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록산이 말했다. 치료의 80퍼센트는, 그 이상은 아닐지 몰라도 바로 너야. 환자라고.(...)
네가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네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의사들뿐 아니라. 네 가족들도. (...)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았다. 366쪽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결심한 것은 퇴원 후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그러나 ‘미쳤다는 소리‘를 듣거나 정반대로 결코 ’아프지 않다‘라고 강제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소리를 낸 여자들을 알았다. 그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서 혹은 에세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약물로 인해 정신이 정말로 흐릿해져 기억이 소멸되는 순간이 늘어날 때에도 병원에서 그녀는 계속 읽고, 계속 썼다. 그리고 학교에 다녔던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누구나 다 죽는 그 삶‘에서 순위를 지나치게 앞다투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읽기에 대해, 쓰기에 대해 그리고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저자를 통해 마주하는 기분은 사실 슬프고 또 슬펐다. 아이를 낳은 후 결코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될 일은 없을거라 확신했던 저자처럼 출산과 양육은 그 어려움과 고통에 비례할 정도로 삶의 의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끌어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지금까지는 여자들만이 가능한 그 경험들의 숭고함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인식하지도 못한 채 받았던 상처들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감히, 저자의 표현대로 상투적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내게 이 책은 인생책, 단 한 권의 책만 남아, 남아 있는 생에 그 책만 읽어야 한다면 신앙과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서슴없이 고를 것 같다. 아프고 아픈 사람들, 너무 아파서 오히려 정신병원으로 도망쳐야했던 그들에게 위로(달리 무슨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와, 자신의 소리를 내주었던 그녀들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의미들 #인생책 #엘리 #수잰스캔런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