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오래 전 광고이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한 햄버거 광고 속 노인이 물어본다. 게 맛을 아느냐고.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자기의 기준이나 사회가 생각하는 공통된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를 아느냐를 묻는 것과 같다. 그렇다보니 게 맛을 안다는 것이 노인의 물음처럼 그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이 책은 ‘게 맛’ 을 포함한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아는 것’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거의 매일같이 질문에 답하고 쓰면서 읽었다. 그리고 이 서평은 책을 읽고 최소한 이정도는 알게 되었다고 답하는 장(場)이기도 하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건 과거의 자신은 죽고 새로운 자신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40쪽
책을 읽는 동안 위의 문장을 참 여러번 필사했다. 성인이 자신을 죽이고 신에게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 비자조적이며 의존적(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나)이라기 보다는 이전의 나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나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들에게도, 실험과 반복을 거치는 수학자들에게도 위의 문구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과거의 나를 버리는 것 뿐 아니라 ‘내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정보와 사람을 두고 고정된 것과 변화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의 이름이라는 정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그 ‘정보’를 위해 고정된 상태이지 않은 나를 끼워맞추고 있으니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자연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인상 깊었다.
왜 자연을 없는 셈 칠까요? 빈터의 나무에는 사회적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매매 가능한 것만 ‘있다’고 인식합니다. 43쪽
요즘은 소설도 ‘사람을 대하는 세계’가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
옛 소설은 그렇지 않았죠. 꽃, 새, 나무, 달이 있었습니다. 자연의 풍경은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넓어집니다. 141-142쪽
자연과 어울려 지내기 위해서는 성실한 노력에 더해 예측 불가능한 것을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노력, 끈기, 인내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주변에 자연이 없으니 자연과 어울리는 데 필요한 성격을 딱히 요구받지 않습니다. 198-199쪽
자연을 떠올렸을 때 처음에는 귀농하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이후에 ‘돌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했을 때에는 사람도 자연도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정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공개된 이후 최근까지도 화제가 되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성격 빼고는 외형이 완벽하게 같은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회사를 다니는 미래와 고향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만 딱히 직업은 없는 미지가 자리를 잠시 자리를 바꾸어 살아가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심에 살던 미래도 끈기와 노력 그리고 인내가 있었지만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것에는 미숙했다. 미숙한 것은 미래 뿐 아니라 미지도 마찬가지이며 그 드라마를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당연히 어느 부분 ‘미숙’하다. 그들이 사람과 자연에게 부대껴가며 ‘알아가고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보며 변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던게 아닐까. 머리로는 알면서 잘 안되었던 것, 내 아이에게 개성을 바라면서도 결국 공통된 무언가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은근하게 던졌던 폭력적인 기대 등이 그러했다. 우리가 약속한 언어와 언어밖의 세상을 알려주고, 자연에서만 기를 수 있는 신체성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많은 과정들의 마중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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