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앞으로 읽을 책만 가져올 거잖아.”
사에코는 속으로 발끈했다.
“금방 읽을 책도 있지만 갑자기 옛날 책도 읽고 싶어지거든. 딱 구분 짓기가 쉽지 않아.” 14-15쪽
위의 대화 내용은 실제 나와 배우자가 결혼 할 때를 시작으로 매번 이사할 때마다 나누는 대화다. 차이가 있다면 나의 배우자는 안타깝게 사에코의 약혼자 요시노리처럼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지 않기에 늘 나만 사에코처럼 주눅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책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샘플북에는 사에코와 요시노리가 결혼을 약속하고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 각자 소장하고 있는 책과 피규어를 정리하기로 약속하는 전후 과정을 담았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예전에는 소소한 것이라도 잘 모아두고 필요할 때 활용하는 사람을 칭찬했지만 지금은 불필요한 소비를 애초에 하지 않는 사람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즘이 찬양받고 있다. 전체 내용을 읽은 게 아니라서 사에코가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잘 버리지 못하게 된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요시노리가 사에코에게는 당연하듯 정리하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는 것이 우유부단하다 못해 답답해보였다. 결국 사에코는 결혼은 하더라도 살림은 합치지 말자는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나라면 아마 정리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결혼 무효’를 선언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책을 손에 들 때마다 이 책과 이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몇 번씩 마음이 흔들렸지만 요시노리에게 해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31쪽
경험을 비춰보면 꽤 많은 양을 정리하고 나면 앞으로 남은 것들도 쉽게 정리할 수 있을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또, 마치 다이어트에 한번이라도 성공해본 사람이 누군가 다이어트 얘기만 꺼내도 전문가 저리가라 식으로 참견을 넘어 설교를 하는 것처럼 사에코 역시 보란듯이 요시노리에게 자신의 과감함과 결단성을 보여주려는 생각에 점점 더 정리하지 못하는 요시노리가 안쓰러우면서도 경쟁자처럼 바라보게 된다.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절당한 요시노리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사에코 본가에 짐을 맡겨도 되는지를 물어보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타인의 물건을 보관해줄 정도로 빈 공간을 여유있게 두는 집이 흔치 않으니 사에코의 엄마 역시 딸 사에코와 통화를 하며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다시 내 얘기를 또 꺼내자면 아이가 태어나면서 집을 옮기는 동시에 책장 두 개 분량을 본가로 보냈다. 처음에는 책을 보내고 나중에는 아이가 입었던 옷, 장난감 등 잠시만, 조금만 이라는 부탁이 점점 늘어나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배우자와 부모님의 생각을 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도대체 왜이렇게 정리를 못하는걸까 싶어 스스로가 한심해지기도 했다. 흔히 책을 팔거나 나누어주면 금새 해결되지 않냐고들 하지만 생각만큼 팔리는 책, 나눔을 받아주는 곳도 많지 않다. 포장하는 것 부터 배송까지, 책은 무게도 상당하기 때문에 받아주는 쪽에서 어느정도 분담을 해주지 않으면 솔직히 버리는 편이 여러모로 수월하다. 그렇게 버려진 책이 쇼핑카트로 10대 정도가 된다. 어플에 올리는 것도 잘 알려진 것처럼 온다고 했다가 안온다는 사람, 가져갔다가 팔 수 없는 책이라며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찬란한 사고를 하는 분들이 많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오자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자기개발서에서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실패한 경험이 많아 미련이 큰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리학적으로 제대로 된 애착 형성이 되지 않았거나 등의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잘 버리는 사람들’ 이라거나 ‘잘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레 요코라는 사람의 마음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저자의 필력을 기대하며 전체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샘플북 서평을 읽고도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라면 함께 완독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무레요코 #버리지못하는사람들 #라곰출판사 #힐링소설 #일본소설 @lagom.b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