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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2월. 을유문화사에서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출간되었다. 그 무렵 한창 리히터에 관심이 생겼던터라 반가운 마음에 600여페이지의 두께가 부담이 아닌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관심의 출발은 백남준의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회 해설 준비를 위해 관련 자료를 찾다가 박사학위 논문 중 리히터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을 ’하이브리디제이션 양식‘으로 비교한 논문을 접하면서 였다.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한 2024년 전시가 바로 해당 작품에서 주제를 끌어왔기에 관련 논문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같은 해(1932년)에 태어난 아티스트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받은 작가들이며, 백남준의 첫 전시 또한 독일이었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조금 있다는 정도였는데 해당 논문을 읽으면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우연이 겹치면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그럴만한 사연이 또 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리히터에 대해 책을 통해 알게 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메체적 균형이 완벽하고 설득력 있게 작동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기술적 단점을 차용하지 않고, 주로 아마추어가 주도한 인상주의 사진의 문체적 요소를 사진적 블러링의 형태로 적절히 차용한 때문이다. (...) 그의 그림은 사진을 모방하고, 이는 다시 회화의 선택적 시각을 모방한다. 따라서 리히터는 자신의 그림이 회화와 사진에 똑같이 속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190-191쪽)
리히터가 시대적으로나 작품세계의 주류가 변화되는 양쪽 모두를 경험한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 리히터의 회화작품과 사진작품을 별개로 감상한 사람들은 어색하다거나 낯설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런 부분이 작가로서는 괴로울 수 있지만 작품을 표한하는 방식이나 활동 자체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가적 역량을 짐작케 한다. 그런가하면 동독에서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서독에서 역시 자본주의에 의해 소비화 되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게 리히터의 작품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고르라면 1960년대 후반에 작업한 풍경화, ’후벨라트 근처의 풍경(1969)‘이다. 얼마전 읽었던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을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수평선‘이 이토록 아련했던가 싶을만큼 맘에 들었다. 당시의 리시터의 방식이나 살아온 배경이 프리드리히와 유사하다고 하여 비교되었다고 하니 해당 글도 찾아서 읽고 싶어졌다. 이어지는 ’아틀라스‘ 전시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위한 ’48점의 초상‘ 전시도 사진 속 작은 사진들로 보고 있자니 현장에서 보았을 사람들이 부러워질 정도였다. 이후 과감하게 표현된 색 만큼이나 무거운 주제등이 거친 느낌으로 다가왔지만 개인사를 함께 읽으면서 그런지 나중에는 별다른 감상이 남아있지 않아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의외였던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정도로 그의 그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또 그런 진중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언제 전시를 볼 수 있게 될지 기대가 자꾸만 커졌다.
˝다른 사람은 수집할 수 없는 특별한 작품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리히터의 작업실을 통째로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리히터가직접 작품을 선택하고 순서까지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작품을 만나면 수집가는 행복할 수밖에 없지요.˝ 419쪽
타이틀에 ’영원한 불확실성‘이란 문구가 쓰여진 이유를 읽는 내내 납득할 수 있었다. 리히터만을 위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이때, 이런 귀한 책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행운이 기대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