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그림 감상, 너무 무겁게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물론 알고 보면 좋은 그림도 있지만, 그림 감상이라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설명이 더해지지 않아서 감상할 수 없는 그림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림의 책임이다. 5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너무 어렵게 그림에 접근하지 말라고 말한다. 총 73점을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맞게 구분하였지만 순서를 따르기보다는 편안하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지는대로, 눈(마음)이 가는 대로 보길 권한다고도 말한다. 그런 저자의 제안을 따라 시월이지만 너무 더웠던 지난 어느 날, 내 맘속으로 총총 걸어들어온 몇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김홍도의 '무동'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원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아 화면 바로 앞쪽에 한 아이가 입꼬리를 슬쩍 올려가며 신명나게 춤사위를 보여주는 작품은 나뿐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TV광고를 통해서도 쉽게 접했던 그림이다. 이전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았던 작품인데 저자의 조언대로 분석하는 마음 대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까지 두루두루 시선을 던져가며 바라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흥'이 느껴졌던 것이다. 동그란 원 안에 빈틈이나 사방 곳곳에 여백이 있는 것이 '삶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한참을 내 맘대로 흥겨워하다가 저자의 부연설명을 읽는 맛이 참 달았다. 이어지는 김홍도의 '황묘농접'은 아이들마저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팔랑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에 눈이 머물거 같다. 이 작품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품으로 앞서 소개한 작품과 달리 전시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묘접도'란 말대신 '모질도'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 노년의 장수와 평안함을 기원한다는 그림의 의도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다음의 해석에 '그저 사랑스럽다'라는 말로 퉁쳐서 바라보았던 것도 영 부끄러울 일만은 아닌 듯 싶다.
고양이가 놀리고 있는 게 나비인지 봄볕인지. 어쩌면 볕에겨워 졸고 있는 고양이를 건드린 건 오히려 나비 쪽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마저도 모르겠다. 이 따스한 풍경에 휘둘리는 건 그저 우리들 마음인지도. 83쪽
이번에는 단순히 흥겹거나 사랑스러운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제법 사색에 가까운 상태로 머물게 했던 작품, 윤두서의 '유하백마도'다. 이 작품은 앞서 소개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18세기 작품으로 고산윤선도박물관 소장품이다. 한 가운데 말 한 마리가 서있는데 안장을 채운 것도 아니고 말의 표정 또한 심상치가 않아 더 궁금해졌다. 책 모서리에 당시의 감상을 적었는데, '말의 표정이 얕지도 깊지도 않은 '적당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구 자꾸 보게 된다.'라고 쓰여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윤두서는 여느 문인 화가와는 달리 사실적인 그림에 능한 인물이다.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림 연습 또한 성실하게 이어나간 화가(101쪽)'이라고 하니 더더욱 말의 표정을 어떤 까닭으로 저렇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작품은 김홍도의 '포의풍류도'로 화가의 방안을 보여준 듯한 그림으로 개인소장품이다. 저자의 말처럼 '나를 보여주기에 소품만한 것도 없다(169쪽)'. 화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 혹은 자주 사용하는 것을 모두 펼쳐보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의 말처럼 그렇게라도 무언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었거나 아니면 백남준의 '버마 체스트'처럼 반쯤 열린 서랍장처럼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교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나라면 내 방안에 있는 소품 중 무엇을 꺼내어 그렸을까 싶은 것이다. 어쩌다보니 김홍도의 작품이 세 작품이나 소개되었다. 책을 다 읽고 밑줄 그어진 페이지를 펼쳐보다 내 스스로도 놀라며, 이렇게 되뇌었다.
'나 김홍도 좋아하네. 어쩌면 동양화를 좋아하는지도.' 같은 날 한국화와 관련된 책을 산 것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저자의 말처럼 시작이 이렇듯 자유롭고 가벼우니 오히려 동양화에 관심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무겁지 않게 감상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