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무엇이든, 세계적인 명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것이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된다고는 해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지 알기란 어렵습니다. p.13
글의 시작부터 저자는 ‘보는 것‘과 ‘관찰‘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림을 볼 때에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떤 작품을 ‘바라볼 때‘의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냥 보는 사람은 그림을 볼 때 전체적으로 그리고 세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물거나 집중되어 있다. 감상평을 말할 때도 구조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부분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글쓰기도 ‘말하듯 쓰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글도, 그림도 보고서 ‘말할 줄 알아야‘한다.
이 책은 총 6장에 걸쳐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술‘을 소개한다. 구조를 파악하게 해주고, 주연과 조연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며 특정 선을 중심으로 그림의 분위기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물과 함께있는 소장품을 통해 대상을 짐작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와닿았던 부분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가령 고흐의 작품은 색채가 주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그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던 몇몇 작품의 색상에 대한 오해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런데 2010년에 시작된 상세한 과학적 조사 결과, 제라늄 레이크라는 분홍색을 띠는 붉은 안료의 색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탈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과학이 반 고흐가 편지에 슨 내용이 그림과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서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입니다. 174쪽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스킴에 대해 설명할 때 여러 작품을 다루기도 하지만 한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석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표지에 실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만 보더라도 배치에 따라 인물이 가지는 지위의 높낮이는 휘어진 구조선을 통해 느낌을 온화하게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나선형 구도로 의도적으로 황금비를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푸티카‘포즈라고 해서 비너스를 그릴 땐 사용되었던 자세를 통해 인물이 누구인지를 타이틀없이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보면 책에 실려있지 않은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좌우 배치에 따라, 래버트먼트 패턴에 의해 안정적인 구도로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짐작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여전히 필요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진짜 이유는 바로 아래 발췌문에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의식을 알기 위한 간단한 방법을 소개할까합니다. 좋아하는 그림이라면 어떤 장르라도 좋으니 세 점을 고릅니다. 그리고 이 세점의 그림을 늘어놓고 이 책에서 살펴본 ˝그림의 조형을 보는 포인트˝를 떠올리며 공통된 사항을 찾아봅시다. 이 공통 분모야말로 여러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나타나는 특징일 것입니다. 334쪽
최근 유명 전시의 경우 한 두 시간의 대기는 물론 예약 마감으로 취소표를 기다리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는 경우도 왕왕 보인다. 유행에 휩쓸리듯 감상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들인 수고에 비해 맘에 들지 않아 크게 아쉬웠던 적이 있다면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그림, 혹은 예술작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만약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오히려 더 궁금하지 않을까. 어떤 구조나 색상 혹은 구도 때문인지를 안다면 작품을 넘어 취향을 알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특정 작가의 작품을 전하는 것에 더해 어떤 이유로 이유로 좋아하는지 특징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같은 영화, 책 등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더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는 기술‘과 함께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까지 기대해 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