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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새의 이야기
  • 너를 봤어
  • 김려령
  • 10,800원 (10%600)
  • 2013-06-28
  • : 1,342

 예전에 어디선가 한 코미디언이 그랬던 것 같다. 한국 사람들 웃기기가 가장 힘들다고. 외국에서는 코미디를 볼 때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데 한국 사람들은 코미디를 볼 때 "얼마나 웃기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본다고. 그래서 웃기기가 가장 힘들다고. 코미디를 보러 왔으면 그저 웃을 준비만 하고 오면 될텐데라고 쓴 웃음을 짓던 그 코미디언은 누구였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쓸쓸한 그림자는 왜 지워지지 않았을까.

 

 코미디언의 말이 생각난 건 이 책을 절반이상 읽고 난 후였다. 마치 내가 코미디를 지켜보는 관객이 된 건 아닐까란 생각에. 김려령이란 작가분이 내게는 그랬나보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작품을 보게 만들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 분명 나를 이전 작품처럼 푹 빠지게 만들거라고, 책을 내려놓고도 한참을 가슴에 품게 만들거라고, 반짝반짝이는 주인공들이 가득할거라고 스스로 덫을 놓아서 읽는 재미를 빼앗기고 있었다.

 

 김려령이란 작가는 얼마나 힘이 들까. 베스트셀러라고 이름 붙은 작가들은 얼마나 가슴을 졸일까. 소설을 소설로 보지 않고 이전 작품과 낫다, 못하다로 평가받지는 않을까 얼마나 전전긍긍할까? 나같은 독자 때문에.

 

 소설을 삼분의 일정도 읽었을 때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글자를 읽고 읽기는 한데 머리 속에 이미지도 관계도도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몰입하지 못하고 읽는 소설은 말 그대로 활자만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책을 덮고 향보다 맛이 더 진한 커피를 마시며 내가 놓친 것을 찾는다. 소설을 소설로만 봐야한다는 것. 좋아하는 작가라고 선입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소설을 읽은 내가 놓치고 있었다.

 

 소설을 소설로만 봤을 때 소설은 소설다워졌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제서야 말을 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참으로 늦게 알았다, 나는.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클거라 생각한다.) 정수현. 얼굴이 예쁘게 생겼다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정수현. 잘생긴 얼굴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과 달리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을 것 같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저 사람은 과거에 아픔이나 슬픔을 전혀 겪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 하지만 그런 사람도 속을 보면 고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서른이 조금 지나고 나니 알 것 같다. 정수현은 그런 사람이다. 보면 너무나 평온해 보이지만 삶에서 숨을 쉬는지 본인도 의심하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랑'을 만났다. 아내도 있는 그가 '사랑'이라 부르고픈, 그저 '너'를 봤을 뿐인데 사랑하게 된 영재가 그 앞에 나타났다. 어쩌란 말인가. 그가 살고 싶다는데. 삶을 살면서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느끼고 살지 못했을 한 남자가 사랑을 만났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또한 감내해야되지 않겠는가.

 

 한남자의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씁쓸한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랫동안 방치 된 어항 안에서 잔뜩 낀 녹조 사이로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물고기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답답하고 끈적하고 습한 기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갈구하게 되는, 결국은 희망을 말하고 싶어지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책을 덮는 순간 안도했다. 이 책을 덮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이야기가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저 나는 수현에게, 영재에게, 도하에게 어깨를 다독일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 다독임마저 필요없을만큼 더 먼 곳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기에 여름의 습도가 너무 높다. 저수지의 물안개가 덮쳐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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