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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조

 

비록 <화재감시원>이 실린 고려원의 시간여행 SF 걸작선이 애저녁에 절판되긴 했지만(그 책 구성도 좋고 참 재미있다. 르 귄의 파리의 4월을 비롯해 재미있는 단편이 가득. 하지만 다른 8편을 다 합친다 해도 내게는 권말에 실린 <화재감시원> 한 편의 무게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스토리상의 연결관계를 따지자면 <둠즈데이북>은 <화재감시원>쪽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지만,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에는 이미 많은 독자들이 관심과 기대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그 정도의 매력이 있었고, 아울러 그만한 인기도 있었다.


발표시기상으로 볼 때 데뷔작인 <화재감시원>이 가장 먼저, <둠즈데이북>이 그 다음,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마지막이다. <화재...>는 읽고 싶어하는 사람에 비해 정작 구해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므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부분 <개는....>에 토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소설의 색채가 전혀 다름을 알았을 때의 심경은 말 그대로 기대 반 실망 반. 읽고 난 후의 심경? 전적으로 전자의 손을 들어주마. <둠즈데이 북>은 최고였다.


우선 설정상으로는 이미 <개는...>의 독자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21세기 중반, 옥스퍼드의 역사연구가들은 '네트'를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여행은 엄격한 규칙에 의한 것으로, 시공간 연속체 속에서 모순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에 영향을 미쳐 현재를 변하게 할 수 있는(이를 미리 숙지하기 위해 변수계산을 비롯한 치밀한 준비과정이 필요해지는데) 어떤 물건이나 생명체도 가져오거나 가져갈 수 없으며, 심지어 시공간의 편차를 일으켜 시간여행자를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이는 히틀러를 죽이거나, 의자왕을 거세하거나; 기타 등등 역사적으로 크나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사건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피해가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연약한 외모와는 달리 소처럼 굳은 심지-따라서 지도교수 던워디의 시점에 주로 의지하게 되는 초반부에서는 그녀를 좋아하기 힘들다. 어쨌든 던워디는 이 무모한 여행을 말리는 입장이었으니까-의 소유자 키브린은 20세기 중반도 아니고 빅토리아 시대도 아닌, 하필이면 중세로 여행하겠다고 고집한다. 일은 그럭저럭 풀려나가는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키브린이 떨어진 곳은 예정보다 20년 이상이나 뒤인 1548년이었다. 이런 전례없는 엄청난 실수가 일어난 것은 21세기 중반의 미래영국을 강타한 정체불명의 인플루엔자 때문.


여기서부터 두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대조를 이루며 나란히 나아간다. 질병으로 고립된 옥스포드 일대와 병을 피해온 영주일가가 살고 있는 시골의 외딴 장원. 기도와 마녀사냥-꼭 화형식만이 아니라 엄청난 불행에 대해 누군가-주로 핍박받는 존재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의 총칭으로서-외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무식한 과거의 사람들과 질병을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려는 역시 무식하고 이기적인 미래의 사람들. 하지만 역시 존재하는 친절한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 용기있고 총명한 과거와 미래의 어린이들, 대가없이 희생하는 과거와 미래의 성자성녀들. 곳곳에 복선을 심어놓으며 두 세계를 대비하여 묘사해나가는 코니 윌리스의 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예컨대 크리스마스를 맞아 울려대는 디지털 종소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위기상태에 놓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패닉에 빠지게 하는데, 이는 중세의 종소리와 완벽한 대구를 이룬다. 자그마한 마을의 적막감을 더욱 강조하는 만종과 조종 뿐 아니라 누군가 죽었을 때 남자의 경우에는 아홉 번, 여자는 세 번, 그리고 아이는 한 번을 치게 되는 사망을 알리는 종소리 말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은 아니지만 <둠즈데이북>의 주제를 말해본다면 아마도 인간애이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애란 병세가 덜한 병자가 더 심한 병자를 돌보고, 시체가 널린 상황에서도 죽음에 대해 적절한 예를 갖출 수 있게하는 마지막 보루를 가리키는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가 경의를 표하고 있는 대상은 대가없이 희생하는 이들이다. 이 점은 <둠즈데이북>이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를 다룬 <화재감시원>의 속편이자 전편임을 확실히 하는 부분. 700년 후의 미래에서 온 키브린이 시골신부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진짜 성자의 모습, 그리고 몸을 아끼지 않고 환자를 돌보다 결국 병으로 죽음을 맞는 700년후 미래의 의사의 모습이 대비되며 감동을 던져준다.


한편 코니 윌리스표 시간여행의 재미있는 부분은 과거에 떨어진 미래인들이 무력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전쟁과 전염병 같은 거대한 적에서 사소한 풍습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에서 드러나는데, 예컨대 키브린은 페스트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할 수 없다. 고름을 닦아내고, 종양을 잘라내며, 열을 가라앉히기 위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약초를 달여마시게 하고 종국에는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친구들을 묻을 구덩이를 팔 뿐이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시차증후군에 시달리며 '주교의 새그루터기'를 찾아헤매는 역사연구가 네드의 얼빠진 모험과 빅토리아 시대의 신경증적 소극, 방약무인한 아씨와 충직한 집사의("언제나 집사가 범인!") 앗쌀한 연애담-적어도 난 진짜 설Ž었고 많은 사람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이었다. <둠즈데이북>은 800쪽에 달하는 고통스러운 묵시록이다. 물론 <개는...>도 700쪽을 훌쩍 넘긴 하지만, 두 소설을 읽는 것은 상당히 다른 색채의 경험이다. 이미 언급했듯 시간여행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무력하며, 코니 윌리스식 웃음은 많은 경우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개는...>의 베리티와 네드는 꼼짝없이 빅토리아시대의 비과학-강신술을 비롯해-과 장황함에 적응해야만 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폭소를 터뜨리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기도 뿐인' 세계, 백신도 위생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없는 중세를 그려낸 <둠즈데이북>에 와서 시간여행자들의 무력함은 진정한 비극이 된다. 누가 코니 윌리스를 수다쟁이라고 했던가. 전, 중반부에서 웃음을 터뜨릴만한 부부닝 적지 않았음에도 키브린을 제외한 중세의 등장인물 모두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문장들은 엄숙하며 냉혹할 정도로 고요하다.

 
과학소설의 애독자들은 <둠즈데이북>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플루엔자와 페스트의 동시(?)발생은 아귀가 모호하고, 199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니만큼 무선통신에 대한 묘사도 없다. 주인공들은 대학학장과, 친척과, 네트를 통한 강하를 돕는 기술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내내 갈팡질팡한다. 21세기 중반인데도! 그러나 소설의 세계는 나름의 균형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고, 적어도 나는 '몇 가지 사물'의 부재를 욕할 마음이 전혀 없다.
 

[덧붙임]


1) 지극한 인간애와 상호존경에 토대하고 있는 키브린과 로슈 신부의 절절한 감정은 아주 잠깐 언급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눈물을 쏙 빼기에 충분하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의 토시와 베인 때도 그랬지만, 이 코니 윌리스란 아줌마 로맨스에 대해 뭘 알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2) 요시나가 후미의 걸작만화 <사랑해야 하는 딸들>의 영어제목은 'All My Darling Daughters'다. <마니아를 위한 SF 걸작선>에 수록된 코니 윌리스의 단편과 제목이 같다! 비록 요시나가 후미가 코니 윌리스에 대해 언급한 것을 (적어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이 단편으로부터 영향받은 작명이라는 데 왠지 돈을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은 두 사람의 작품세계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뚜렷한 공통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언급하자면 유머 속에 묻어나는 초연함과 현명함, 살짝 현학적인 분위기, 인간애 같은 것들. 어떤 작가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자를 '그 이들, 분명 같은 별에서 온 사람들이야'라고 믿어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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