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바깥양반이 저녁 먹으러 나오라기에 약속 장소로 가는데,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 옆구리 광고판에서 희한한 문구가 눈에 띈다. "아부지 뭐하시노? 지휘하시는데예" 클래식 공연 광고 치고는 참 희한하다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정민의 차이콥스키"라는 공연 제목 아래에 작은 글자로 적힌 "정명훈 아들"이라는 문구가 뒤늦게야 보였다.
저 유명한 영화 대사를 인용한 것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아버지가 지휘하고 아들이 협연하거나, 또는 부자가 하루씩 연이어 지휘하는 이색 연주회인 것인가 추측했었는데, 알고 보니 지휘자 정명훈의 아들 정민이 지휘하고 다른 연주자가 협연하는 공연을 선전하는 것이었다. 문득 요즘 유행하는 밈처럼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 전 지휘자 정민의 데뷔를 앞두고 나왔던 여러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자가 지휘자로 활동하는 사례는 해외에서 드물지도 않고, 또 정명훈 자체가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유명한 지휘자이니 그 아들에게도 관심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버지가 직접 참여하지 않는 공연에도 그 후광을 굳이 빌려오는 것은 좀 민망하지 않나 싶다.
스포츠 스타 2세인 이정후와 차두리도 유명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고충을 토로한 바 있지만, 그래도 각각 메이저리그와 광고계(?)에서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는 후광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여길 만한데, 정민의 경우는 오히려 후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니 이상한 일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 '빽'을 사용한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 않을까.
연예계의 스타 2세 중에는 아버지와 비교되거나, 또는 그 후광을 입었다고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예명을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광고에서부터 대놓고 '지휘하시는 아부지'를 들먹인 것은 뭔가 지나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지휘자 정민'으로서가 아니라 '정명훈의 아들'로서 평가를 받겠다는 의도인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지휘봉수저'인 셈인데, 나날이 경쟁이 심화하는 세상이다 보니 유독 불공정에 민감한 최근 풍조에서는 어떻게 보일지도 궁금하다. 물론 조국 사태부터 갑질 학부모까지 갖가지 '내 새끼 지상주의'가 판치고, 신임 장관 후보자 중에도 가족 특혜 논란에 휘말린 사람이 여럿이라니, 이쯤 되면 이것도 한국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라 봐야 할지 모르겠다만...
[*] 그나저나 어제 뉴스를 보니, 어느 유명 에세이 작가가 신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출판사와 공모해서 사재기에 나섰다가 적발되어 재판에 넘어갔다고 한다. 구작 중에는 무려 170만 부나 판매된 베스트셀러도 있다 하고, 심지어 감성 에세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불신하여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귀님조차 저자 이름이나 책 제목을 중고샵에서 한두 번쯤 접한 듯한 느낌마저 있으니 제법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사재기한 신간뿐만 아니라 구간도 모조리 절판되었으니, 이쯤 되면 황금 알을 낳다 말고 할복한 거위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문득 저 사람도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