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에 들어온 바깥양반이 아침 일찍 극장 가서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기에, 과연 어느 정도로 원작과 다르게 각색이 되었나 궁금해서 몇 가지 기억나는 대로 질문을 던져 (예를 들어 '아르고스를 연기한 배우는 누구인가?') 답변을 들어 보니, 현대적 해석이 상당 부분 가미되며 사실상 원작 훼손 수준의 변형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오디세이아>는 완전한 비극만도 아니고, 오디세우스 역시 완벽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현대식 해석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면 제신과 마법을 완전히 배제한 청동기 시대 야만인들의 생존 투쟁기로 묘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과격한 수준까지 각색이 이루어졌다면 복식 고증이나 배우 섭외 등에서의 논란도 애초부터 안 생기지 않았을까.
이번 영화의 고증 논란은 보르헤스가 지적한 '투명인간'의 난점을 연상시킨다. 고대의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를 설명하면서 그런 마법 반지가 있었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끝이지만, 현대의 웰스는 '투명인간'의 사실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구구절절 들어야 하니 힘들었단 거다. 평소 사실성을 중요시한 영화 감독이니 고증 논란도 자연히 따라붙은 것이 아닐까.
배우 섭외 관련 논란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엘리엇 페이지이다. 트랜스젠더인 탓에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왜곡 시비가 벌어질 것 같더니만 결국 원작에는 없었던 배역을 담당한 듯하다. 나귀님 생각에는 이 배우야말로 남녀 양성 모두로 살아보았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역할에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역할을 안 맡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간교한 영웅이다. 거짓말과 시치미는 기본이고, 자만한 행동으로 위기도 자초하니, 마블 영화로 치면 시종 진지한 캡틴보다는 깐죽대는 아이언맨과 더 유사하다. 긴 여정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감금당했지만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는 굴욕조차 받아들이니, 그를 무조건 지치고 힘든 인물로만 묘사한 것은 절반만 본 셈이다.
현실의 전쟁을 의식한 까닭인지, 이번 영화는 <오디세이아>를 너무 어둡게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감독의 이름값 때문인지 흥행과 평론 모두 호평 일색이지만, 좀 더 객관적인 평가는 더 기다려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호프> 논란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듯이, 관객의 반응이 기껏해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색이라면 걸작까진 아닐 수 있으니까.
나귀님이 이제껏 본 그리스 신화 영상화의 최고봉은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대>(1963)이다. 고증 따위는 가뿐히 씹어버리고 순수한 재미로 승부하는 영화인데, 특히 레이 해리하우젠이 전설적인 스톱모션 특수 효과로 구현한 청동상과 해골의 모습은 지금 봐도 충분히 신기하다. 작품성으로 따질 수는 없어도 오락성으로 따지자면 가히 최고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오디세이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엉뚱하게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대목에서 그 작품이 언급된 것이 생각난다. 작년엔가 예능 프로 <케냐 간 세끼>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꺼낸 책인데, 왜냐하면 저자인 이사크 디네센(카렌 블릭센)이 한때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했고, 그 기억을 더듬은 회고록이 훗날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대목에서는 저자가 책을 쓴다며 타자기를 두들기자, 옆에서 지켜보던 원주민 하인 소년이 나름대로 논리정연한 반론을 제기한다. 즉 책장에서 꺼낸 책 한 권을 보여주며 '책이란 이렇게 한데 묶인 것이지만, 주인님의 글은 낱장으로 떨어져 있어서 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원고(낱장)와 제본서(책)의 차이를 오해한 것뿐이다.
이때 소년이 꺼낸 책이란 바로 <오디세이아>였는데, 저자가 내친 김에 그 내용을 설명하며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양을 이용해 탈출했다고 말하자, 소년은 그 양이 자기가 본 양과 비슷한 것인 듯하다고 단언한다. 허구 속의 대상을 자기 주변의 대상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특이한 사고방식은 백인과 원주민의 접촉을 다룬 책에서 흔히 등장하곤 했었다.
이번에 뒤적여 본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열린책들의 '미스터노' 페이퍼백 판본인데, 뒤표지를 보면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그보다 20년쯤 전에 나온 <아웃 오브 아프리카>(위미숙 옮김, 포커스, 1991)라는 번역본도 있었다. 생각난 김에 그것도 꺼내 대조해 보니 전5장 중 단상 위주인 제4장(어느 이민자의 노트)를 제외하고 번역했다.
포커스 판본은 예를 들어 개 이름 "더스크"(dusk)를 "다스크"로 표기하는 등, 고유명사 표기가 어색한 것으로 미루어 일어 중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꾸로 포커스 판본이 더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저자의 하인이었던 원주민이 보낸 안부 편지에서 상대방을 "암사자"라고, 즉 "암사자 블릭센"과 "존귀하신 암사자님께"로 호칭한 대목이 그러했다.
열린책들 판본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 반면, 포커스 판본에서는 저 원주민의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까닭에 '남작부인'(Baroness)을 '암사자'(Lioness)라고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역주가 붙어 있다.(문득 국문학자 양주동의 일화에서 어느 제자가 보낸 안부 편지를 보니 "恩師(은사)"를 "鬼帥[귀신 장수]"라 잘못 적었더라던 대목이 떠오른다).
그래도 과거에 포커스 판본이 반가웠던 까닭은 '영화 소설'이 아니어서였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2000년대 이전의 간행물 중에는 어떤 외국 영화가 개봉되면 그 원작이 아니라 영화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설로 각색하고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붙인 조악한 출판물이 범람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영화 개봉 후에 그런 책들이 여러 종 나왔다고 기억한다.
아울러 포커스 판본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저자와 주요 인물의 사진이 흑백으로나마 몇 가지 수록되었다는 점인데, 이에 비해 열린책들 판본은 도판이 전무하다. '포커스'라는 출판사 발행인이 사진작가 김용범이고, 뒷날개에 그의 아프리카 사진집도 선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원작 번역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개인적 관심의 연장이었던 걸까.
앞서 언급한 원주민 소년은 케냐 총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는 키쿠유족이었다. 외계 행성에 아프리카 같은 자연 환경을 만들어 전통 문화를 유지한다는 묘한 내용인 <키리냐가>의 주인공도 바로 키쿠유족이었다. 유명한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의 아들인 리처드 리키도 어려서부터 키쿠유족과 생활해서 그 부족 특유의 성인식(!)까지 치렀다는 이야기가 문득 기억난다.
[*] 루이스 리키에 관한 이야기는 제인 구달에 이어 비루테 갈디카스까지 타계함으로써 '어쩐지 모두 세상을 떠난 세 딸들'에 대한 글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자. 물론 '나스타샤 킨스키 4종 세트'나 '마리루이제 플라이써의 길고 화려한 극작가 생활'처럼 머릿속에는 다 들어 있지만 막상 옮겨 적으려니 귀찮아서 어영부영하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