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영화 <오디세이> 개봉에 맞춰서 알라딘에서 개설한 "오뒷세이아" 이벤트 페이지를 보니 알라딘 자체 제작 티셔츠 2종이 나온다. 그중 하나인 "항해" 티셔츠의 범선 그림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서 지난번에 쓴 글 말미에 지적질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서 확인해 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제의 "항해" 티셔츠는 현재 품절이라서 8월 13일에 재입고된다고 한다.


나귀님의 지적질에 뒤늦게야 실수를 깨닫고서 그림을 수정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항해"가 "투구"보다 더 인기가 많았던 까닭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투구"에 나온 갤리선이 호메로스 서사시의 시대 배경에 어울리는 선박인 반면, "항해"에 나온 범선은 (돛과 돛대의 모습을 보면 '바크선'이라고 해야 할까?) 누가 봐도 근대의 선박이라고 해야 맞을 거다.


서사시의 제목이자 이번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오디세이"(the Odyssey)가 종종 "모험"이나 "방랑"이란 의미로도 사용됨을 감안한다면, 그 영어 단어를 크게 새겨 넣고 바크선인지 클리퍼선인지를 집어넣은 "항해" 티셔츠도 '일반적인 의미의 항해를 뜻했을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겠지만, 하필 바로 밑에 저 서사시 원문을 적어 놓았으니 어이없는 실수가 되겠다.


비유하자면 충무공 탄신 기념이랍시고 알라딘에서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맨 위에는 "한산대첩"이라고 쓰고, 맨 아래에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조의 첫 구절을 적은 다음, 막상 그 사이에는 임진왜란과는 무관한 현대식 항공모함 그림을 떡하니 박아놓은 것과 유사한 정도의 고증 오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진짜로 그랬다면 난리가 났겠지).


그나저나 평소에는 둔감한 편인 나귀님께서 남들이야 무심코 지나칠 법한 범선의 모양에 대해서 유독 주목한 까닭은, 마침 며칠 전에 어떤 범선의 정체에 대해 구글링해 보았기 때문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인 영화 <록키>의 저 유명한 "훈련 장면"에서 막판에 부둣가를 질주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옆으로 늘어선 선박들 중에 꽤 큰 범선이 한 척 있었다.


영화가 1976년작인데 과연 그때도 현역인 범선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구글링해 보니 저 범선은 '모슐루'(Moshulu)호라는 7,000톤급 강철 바크선이라 한다. 1904년 건조되어 곡물 운반선으로 활약하다 1940년대 후반 퇴역했고, 이후 수상 곡물 창고로 사용되다가 <록키> 등장 당시에는 수상 식당으로 개조되었으며, 지금도 필라델피아 항구에 남아 있다 한다.


돛대 네 개짜리 범선이기는 하지만 목재가 아니라 강철 선체인 까닭에 무려 120년 넘도록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길이가 120미터에 너비가 14미터로 덩치가 워낙 크니 퇴역 후에도 창고며 식당으로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퇴역 후 다른 용도로 활용된 선박의 사례라면, 서울 망원동 한강변에 있는 해군 군함 개조 전시관도 생각난다.


외국에는 퇴역 선박을 수상 호텔로 개조한 경우도 있다고 하고 (그 명칭은 '보트 + 호텔 = 보텔'이니, 우리나라 같으면 또 이상한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라며 페미니즘 논문이 한 편 나올 법하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는 센 강에 띄운 낡은 바지선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개조해서 저소득자용 집배로 만든 일화가 유명해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책까지 나왔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추앙되는 르 코르뷔지에도 아줌마들에게는 '뭘 모르는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란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에 나온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가 지은 주택은 건축 미학 면에서는 뛰어난 건물인지 몰라도 막상 살기에는 불편해서, 공장 사택 같은 경우에는 애초의 설계와 달리 천차만별로 개조당했단 거다.


제아무리 위대한 건축가의 기발한 생각조차도 실생활의 불편함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으니, 길어야 4-5년에 불과한 임기 동안 부동산 정책을 쥐락펴락하려는 대통령이며 국회의원의 삽질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며칠 전에 한 국회의원이 외국에서 노후 선박을 주택으로 개조하듯 노후 버스를 주택으로 개조해 청년층에 공급하자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애꿎은 청년층을 희생양 삼는다며 비난이 빗발치자 재빨리 발언을 철회한 모양이니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결과물은 외국에서 빈곤층 주거지인 트레일러파크와도 유사할 터이니 반가울 리 없다. 다만 최근 캠핑카 방치가 골치인 지자체도 많다니, 차라리 그걸 다 몰수해 만든 트레일러파크를 헐값 분양하자 제안했다면 반응이 달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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