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뜩이나 폭염이 한창인 와중에 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무려 세네카의 책이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기후 변화 때문인가, 아니면 또 리센느 때문인가. 이미 붓다와 쇼펜하우어 책이 한 번씩 차지하고 내려간 다음이니 세네카라고 해서 예외로 칠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그 세네카 책이 뭔가 함량 미달의 편역서로 보인다는 점이다.
문제의 세네카 책은 자기계발 콘텐츠로 구독자 90만 명을 찍었다는 유튜버 하와이대저택이 편저했다. 나름대로는 감명 받은 책이라고 해서 세네카의 저술을 직접 번역하고 재구성했다는데, 문제는 원문에 충실하지도 않고 뚜렷한 의도가 드러나지도 않아 영 애매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세네카의 책도 아니고, 하와이대저택의 책도 아닌 애매한 물건일 뿐이다.
보통 고전을 편역한다면 완역과 달리 편역자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나귀님더러 세네카의 저술을 편역하라면, 오늘날의 국내 독자에게는 영 생소할 수밖에 없는 로마 제국 당시의 인명과 관직명 같은 각종 고유명사를 모두 발라내고,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일리가 있을 법한 내용만 선별해서 어느 잘난 꼰대의 조언처럼 꾸며내고 말겠다.
그런데 문제의 책은 완역본인 천병희 번역서와 비교했을 때 내용을 군데군데 덜어내고 다르게 연결해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일러두기에는 영역본을 대본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있는 그 원문과 대조하니 그쪽과도 일치하진 않는다. 종종 축약과 첨언이 등장하다 보니 원래의 문맥과 사뭇 달라져 오해를 야기할 만한 부분도 없지 않다.[*]
세네카의 대화편에는 장절 구분이 있어서 편역서라면 그 출처를 표시하게 마련이고, '성공론' 분야의 편역서도 일부에선 이런 규약을 따랐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분명히 세네카의 말과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곧이어 생소한 문장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이게 과연 다른 부분에 나온 세네카의 말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편저자의 첨언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세네카의 대화편에도 애초의 문맥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편역서라고 한들 내용을 삭제하거나 순서를 뒤바꾸는 것이 항상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장절로 그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그래서이니, 이를 통해 편역자가 어떤 의도와 논리로 세네카의 대화편을 재구성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저자의 첨언이 과도하게 섞이면 문제다.
편저자의 독창적 해석을 내세울 의도였다면 차라리 해설서를 쓰는 게 맞다. 예를 들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처럼 인용문을 내놓고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이면 충분했을 텐데, 세네카의 텍스트라고 해놓고서 실제로는 누락과 첨언이 많다는 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만약 하와이대저택의 유튜브 콘텐츠를 누군가 이처럼 멋대로 편집해 유포하면 수긍할 수 있을까?
여하간 나귀님 기준으로는 절대로 세네카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상한 편역서인데, 이런 책을 왜 만들고 왜 사는지 의문이다. 물론 하와이대저택은 '편역'이라는 말로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영화 <오디세이> 개봉에 맞춰 각종 '편역서'가 난무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읽은 독자라면 어디 가서 '세네카를 읽었다'고 자부하진 말아야 맞겠다.
이번 일로 인해 또 하나 걱정스러운 점은 앞으로의 부작용이다. 세네카의 말과 편저자의 말이 뒤섞인 책이 무려 베스트셀러씩에 등극했으니, 머지않아 양쪽의 말을 구분할 수 없는 까닭에 원문에는 없었던 편저자의 말이 세네카의 말로 와전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저 유튜버가 이미 여럿 나온 세네카 원전 번역서를 추천했다면 그 진정성도 인정했을 텐데.
그나저나 나귀님이 보기에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하와이대저택의 세네카 편역서가 무려 16,200원인데 천병희의 대화편 4종 완역본은 15,300원이라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재료도 덜 들어가고 조리도 애매한 음식을 더 비싸게 먹는 셈이니, 결과적으로는 독자만 손해 아닐까. 물론 그 독자가 하와이대저택의 구독자라서 군말 없이 책을 산다면 편저자에게는 이득이겠지만.
나귀님이야 저 편역서를 알라딘 미리보기로만 살펴보았으니 다음 구절도 거기 들어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뜬금없는 세네카 책 구매자들이라면 한 번쯤 귀담아 듣기 바란다. "더 나은 것이 다수의 마음에 든다면 좋으련만 인간은 그렇지가 못해요. 군중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곧 그것이 최악이라는 증거니까요."("행복한 삶에 관하여" 2장 1절, 천병희, 169쪽)
[*]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서 << >>로 표시한 대목을 원전 번역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내용을 편역자가 빼먹은 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 하와이대저택 편역서: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자연을 향해 따졌다. 어떤 동물에게는 수백
년을 허락해 놓고, 인간에게는 왜 이토록 짧은 시간만 주었느냐
고.
<< 그러나 전제 자체가 틀렸다.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다. 쓰임이다. >>
거대한 왕의 재산도 나쁜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18쪽)
2. 천병희 번역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연에 대해 철학자답지 않게 시비를 걸었지요
. "자연은 동물에게는 인간보다 다섯 배 또는 열 배나 오래 살도
록 수명을 넉넉히 주었거늘 그토록 많은 일을, 그토록 큰일을 하
도록 태어난 인간에게는 그토록 짧은 수명을 정해놓다니" 하고
말이오.
<< 그렇지만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
하고 있는 것이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한다면 우리
의 수명은 가장 큰 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지요. 하지만 인생이
방탕과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버리면, 좋지 못한 일에 인생을 다
소모하고 나면, 그대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강요에 못 이
겨 인생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오.
짧은 수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
명을 넉넉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라
오. >> 마치 왕에게나 어울릴 넉넉한 재산도 적합하지 않은 주인
을 만나면 금세 탕진되고, 얼마 안 되는 재산도 제 주인을 만나
면 사용함으로써 늘어나듯이, 우리의 수명도 제대로만 배분하면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이라오.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