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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사이에 드디어 <자불어>를 완독했다.(번역서 제목은 <청나라 귀신요괴전>이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쓸데없이 길기만 하고 멋대가리 없는 제목이어서 원제로 지칭한다). 그 서문에 등장하는 "귀거"(鬼車) 관련 황당한 오역과 엉터리 역주를 지적하는 글을 올린 때가 2023년 연말이었으니, 그때부터 계산해도 무려 2년 반만에야 간신히 완독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상하권 합쳐 19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버거워서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짧은 일화를 모아놓은 작품의 특성상 몇 편 읽고 덮어놓고, 한참 뒤에 다시 펼쳐 몇 편 읽고 도로 덮어놓는 식으로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 모두 그리 좋지는 않아서 종종 알듯말듯 모호한 문장이 등장하고 오타가 빈발한 것 역시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였다.


<자불어(子不語)>는 <논어> "술이"편에 나온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즉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라는 문장에서 "공자께서는 ... 말하지 않으셨다"를 가져와 제목으로 삼았으니, 결국 "괴력난신"에 관한 내용이란 뜻이다. 역시나 청대의 작품인 <요재지이>처럼 귀신, 괴물, 불가사의 등에 대한 일화를 두루 모았다.


다만 문학성 면에서는 한 세기 더 먼저 나온 <요재지이>보다 아무래도 한 수 아래로 보이기도 한다. <요재지이>가 본격적인 소설에 가깝다면 <자불어>는 여전히 필기(수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수신기>나 <이견지> 같은 더 이전 시대 필기류의 간략하고 단순한 서술에 비하자면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고전 괴담의 주요 유형 중 하나는 신원(伸寃), 즉 억울함을 해소하는 내용이다. <자불어>에서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원혼이 되어 직접 복수하거나 관헌에 호소해 간접 복수하고, 인간이 아니라 요괴에게 당한 경우에는 성황신 같은 상급신에게 민원을 제기하여 정의를 구현한다. 심지어 최근 논란인 '보완 수사'와 유사한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보전에서의 억울한 옥살이"(9권 7편)에서는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아들이 끌려가며 성황신에게 호소하자 신상이 움직여 앞길을 막는 바람에 결국 재조사가 이루어져 누명을 벗는다. 사실은 이에 앞서 상급 관리가 수사 결과에 뭔가 미진한 데가 있다고 여기고 '보완 수사'를 명령했지만, 하급 관리가 이에 따르지 않으려다가 성황신의 분노를 산 것이다.


"정녀가 억울함을 하소연하다"(22권 29편)에서는 강간 살인 피해자인 여성의 원혼이 <장화홍련전>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한밤중에 상급 관리를 찾아온다. 자기 부모와 하급 관리 모두 가해자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축소했다며 눈물로 호소하자, 상급 관리는 날이 밝자마자 하급 관리에게 '보완 수사'를 지시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하화아"(22권 4편)에서는 남녀의 원혼이 어느 선비를 찾아와 전생의 원한을 갚는다. 과거에 남녀는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사건을 담당한 하급 관리가 '보완 수사'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형 집행을 계속 연기했다. 하지만 선비의 전생 모습인 상급 관리가 하급 관리를 닦달해 사형을 집행한 까닭에 결국 피해자 두 명의 원한을 사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귀신의 세계라고 해서 항상 정의롭고 공정한 것까지는 아니다. 고전 괴담의 또 다른 주요 유형인 '저승 여행'은 주인공이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가, 뒤늦게야 업무 착오로 판명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짬을 내어 그곳 사정을 자세하게 구경하고 오는 내용이다. 이때 저승에서도 뇌물이 오가고 사정을 봐주는 등 이승과 다름없는 듯 묘사된다.


중국의 대표적인 괴담집은 대부분 저자의 불우함을 반영했다고 여겨진다.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은 환갑에야 과거에 합격했고, <자불어>의 저자 원매도 과거에는 합격했지만 한직을 맴돌다가 퇴직하여 창작에 몰두했다. 따라서 이런 창작물 속의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은 현실에 대한 불만의 반영일 수 있겠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허구에서라도 그렇기를 바랐달까.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논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이라 한다.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검찰 수사를 강제하게끔 만든 제도라는데, 이것 역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의 반영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검찰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없애자고 하는데, 이게 없어질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최근의 '장윤기 사건'이 보여주었으니, 지금이라도 재논의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검찰 권력의 부작용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라면 탄핵을 두 번이나 겪은 대통령 제도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간주해서 검찰보다 먼저 척결해야 맞지 않을까. 경찰이라 해서 더 낫지 않음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는데도 굳이 검찰을 '개혁'하겠다면, 아마 딴데 의도가 있진 않을지.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여고생 가족이야말로 정말 괴담 내용처럼 죽어서라도 원한을 갚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 세상에 귀신이란 없다는 것은 앞서 세월호 때며 무안공항 때에 이미 입증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의 공분을 자아낸 저 두 가지 사건 때에도 억울한 사람은 분통이 터져도 보복하지 못한 반면, 잘못한 놈들은 다리 뻗고 잤으니까.


과연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자불어>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로 싸우는 두 신"(3권 12편)에 따르면, 세상 만사를 소왕(素王: 술수)과 이왕(李王: 이치)이 7대 3의 비율로 나누어 처리하기에 "이치가 술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했다"며 "세상의 인심, 천리, 선악, 시비는 결국 30퍼센트의 정의가 있을 것"이라 전한다.


70퍼센트의 불의와 30퍼센트의 정의라.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정의와 공정은 이상일 뿐 실현되기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공자는 저 30퍼센트를 실현하겠답시고 평생을 허비한 셈인가. 아울러 그가 말하지 않았던 저 70퍼센트의 불의는 괴력난신의 틀을 거쳐 <자불어>나 <요재지이> 같은 기록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 <요재지이>의 경우,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조너선 스펜스의 <왕 여인의 죽음>에서는 당대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17세기 중국에 살던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작가 포송령의 저 괴담집에 나타난 풍속 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결말 부분에서는 오로지 <요재지이>에서 가져온 인용문만을 열거함으로써 저 살인 사건을 서술하는 희한한 묘기를 부리기까지 한다. 생전의 월터 벤저민도 순수하게 인용문만 가지고 책을 한 편 쓰고 싶다고 했었다니, 어쩌면 스펜스의 저술 속 한 대목도 그런 구상이 현실화된 한 가지 사례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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