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그나저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이력 중에는 1968년에 페르난도 아라발의 희곡 <환도와 리스>의 영화판에서 감독을 맡은 것도 있었다. 원작도 <고도를 기다리며> 유형의 난해한 부조리극이었는데,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갖가지 기괴한 이미지를 등장시킨 까닭인지 흥행은 고사하고 비평 면에서도 참패를 면하지 못하며 한동안 호도로프스키의 흑역사가 되었다.


페르난도 아라발(1932년생)은 에스파냐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극작가이며,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 유파에서 영향을 받은 '공황극' 운동을 1962년 호도로프스키 등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훗날 컬트로 추앙된 호도로프스키의 <엘 토포>와 <신성한 산> 같은 영화며, <잉칼> 같은 만화도 어쩌면 '공황극'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환도와 리스>는 예전에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세계희곡선 3: 현대편>에 수록된 김정옥 번역으로 처음 읽었는데, 워낙 부조리한 내용이다 보니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른 선집에서 다른 작품도 몇 편 읽어보았는데, 나중에 장정일의 희곡을 읽어보니 아라발 작품의 영향이 두드러진 느낌이 나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헌책방에서 세로쓰기로 간행된 <아라발 희곡집>(구글링해 보니 1권은 1975년에 한국연극사, 2-3권은 1981년에 유림사에서 각각 간행되었다고 나온다)을 발견해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중에 미번역 작품까지 포함해서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고글, 1998)이 재간행되었기에 구입하고 구판은 헌책방에다 처분했다.(자료 가치를 생각하면 그냥 둘 걸 그랬나).


아라발의 <희곡집>과 <희곡 전집> 모두 동의대 불문과 교수 김미라가 번역했다. 대학생 시절인 1975년에 아라발의 연극을 보고 매료되어 아예 전공하게 되었으며, 저자를 여러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희곡 전집> 서두에는 자기 작품의 한국어 판권을 김미라 교수에게 위임한다는 아라발의 친필 편지가 나오는데, 당시에는 그게 일종의 판권 계약이었다.


김미라 교수는 1975-1981년에 아라발의 희곡 23편을 번역해서 <희곡집>(전3권)으로 간행했고, 1998년에 희곡 32편을 수록한 <번역 전집>(전7권)을 간행했다.(역자 서문에서는 50편이라 했는데, 부록의 편수까지 합친 듯하다). 동의대 퇴임 이후에는 '김라'라는 예명으로 단편 영화 제작 및 지원에 전념했다 하는데, 안타깝게도 2025년 2월 10일 별세하고 말았다.


구글링해 보니 김미라의 남편인 동의대 영문과 교수 김창호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는 1989년에 대학 입시 비리를 폭로해 해직되었는데, 그 여파로 그해 5월 3일에 '동의대 사태'가 벌어져서 농성 중인 동의대 학생들을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나귀님도 여전히 '동의대' 하면 이 사건을 떠올릴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컸었다.


김창호는 해직 17년 만인 2006년에야 복직했는데, 독문과 교수였던 장희창도 함께 해직되었다가 역시나 함께 복직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장희창의 번역서를 보면 이력에 현직 교수까진 아닌 것으로 나오기에 무슨 사연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창호의 번역인 테리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도 해직 기간 중의 작업인 듯하고.


나귀님이야 아라발의 열혈 독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여느 극작가보다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소장하고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김미라 교수의 노력이 일찍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알라딘에 등록된 "아라발 희곡전집 (전)7권"의 서지 정보에도 "김미라"라는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민망하여 뒤늦게나마 두서없이 적어본다.




[*]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김미라 옮김, 고글, 1998) 목차


제1권

백색의 사랑

네 개의 입방체

빨간 풍선

질투의 스트립 쇼

사랑의 삽화

구름 위의 염소

신이 미쳐 버렸나?

검붉은 여명

달걀 속의 협주곡

20세기의 대 시사극


"공황 연극"(훼르난도 아라발)

"<검붉은 여명>의 초연에 대한 연극평"(J. GX)

"아라발 희곡에 나타난 악몽의 이미지"(김미라)

"아라발의 전기"(김미라)


제2권

기도

천년 전쟁

피살된 흑인을 위한 의식

게르니까

오늘의 젊은 야만들


"천년 전쟁"(훼르난도 아라발)

"천년 전쟁"(조르주 라벨리)

"분노의 연극"(에스피나스 호랑좌스)[인터뷰]

"표현의 불꽃"(알랭 쉬프르)[인터뷰]


제3권

유령 기차의 발라드

사형수의 자전거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


"연극의 르네쌍스"(훼르난도 아라발)

"아라발의 <혼돈>의 의식"(알랭 쉬프르)

"아라발과의 인터뷰: 아라발과 감옥"(알베르 쉐노 & 엔헬 베렌구에르)


제4권

바벨 탑

싸움터의 산책

대관식


"바벨 탑"(도미니끄 쎄르벵)

"아라발의 낮과 밤"(김미라)

"신과 성의 문제"(김미라)


제5권

환도와 리스

삼륜자전거

페가서스의 바이올린

쾌락의 정원


"쾌락의 정원"(꺄미이으 아마리)

"아라발과의 인터뷰: 훼르난도 아라발의 연극 세계"(김미라)


제6권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

미궁

장엄한 예식


"아라발의 신화"(삐에르 마르까브뤼)

"아라발의 세계"[1992년 60세 기념 전시회의 헌사 모음]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 (이오네스코)

눈이 날카로운 안경 장사 (미쉘 비토르)

천재적인 악마 (베르나르 앙리 레비)

그림 같은 천사 (조르쥬 라벨리)

현상 (밀란 쿤데라)

밤의 발굴자 (김미라)


제7권

예수, 마르크스, 셰익스피어가 얻은 의외의 성과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

도스토예프스키란 이름의 거북이

자동차 묘지


"희곡의 새로운 형태"(즈느비에브 쎄로)

"작가 아라발"(프랑스어문학 사전, 보르다스 출판사)

"작품연보 및 참고도서"


[**] <희곡 전집> 각 권 말미에는 아라발 본인의 글을 비롯해서 저자와 작품에 관한 비평 같은 참고 자료가 덧붙었는데, 그중 6권 말미에 수록된 아라발의 60세 기념 전시회 당시 이오네스코가 보내 온 헌사가 흥미로워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이오네스코)



프랑코 장군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라발은 자기가 태어난 스페인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래 그곳에 갔다. 그리고 자기 책에 증정 사인을 했다. 프랑코 장군한테는 모욕이었다. 누가 프랑코에게 책을 갖다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아라발을 감옥에 가두었다. 바로 그 감옥에서 아라발이 나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내 아내가 아라발의 석방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이 탄원 서명서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었다.


당연히 사르트르나 다른 극좌파 작가들한테서 서명받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는 장 아누이와 프랑수아 모리악(가톨릭 신자였기에)과 몇몇 작가들에게 달려갔다. 가브리엘 마르셀한테도 청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아라발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서명할 뿐이다. 나는 아라발의 연극을 좋아하지 않아서 한 손으로만 서명을 한다." 한 손으로든 두 손으로든 가브리엘 마르셀도 서명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진심으로 서명했다. 서명서는 스페인에 보내졌다. 우익 작가들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서명을 한 덕에 아라발은 석방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나는 아라발을 무척 좋아한다. 서명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중간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는 또 서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다신 없어야 한다.


내가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지, 어째서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의 바로크적인 정신을 좋아하는지, 해박한 그의 문화 정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무엇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지를 한 번은 얘기하고 싶다.


1992. 6.


(김미라 번역, <아라발 희곡 전집> 제6권, 286-287쪽)




[***] 마르셀이 아라발에 대해 분개한(?)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뉴욕 타임스> 1982년 3월 28일자 기사 "페르난도 아라발의 귀환"에 희한한 일화가 소개된다. 한 번은 마르셀이 아라발의 희곡 <자동차 묘지>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중간에 벌거벗은 여배우가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객석으로 떨어져 마르셀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양반, 공연 끝나고 고해성사하러 갔지요." 아라발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평소 기질이며 인터뷰 분위기를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겠다. 


이 기사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기고자가 파리에 있는 저 극작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한국 여성 두 명이 그의 희곡 전집 번역에 참고할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기 때문이다. 혹시 김미라 일행이었을까? 기사에 따르면 아라발은 두 여성을 친절하게 대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한국어 번역본이 세로쓰기라는 사실에 흥미를 보이며 농담까지 했다고 전한다.(나중에 김미라가 아라발의 아파트로 찾아가 인터뷰하며 보니, 자기가 번역한 <작품집> 세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더라 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구글 세상이 되니까 이런 옛날 기사도 클릭 한 번에 검색되는구나 싶다. 김미라 교수도 생전에 이 기사를 보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타계 전에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면 아라발의 작품이며 일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 1932년생으로 김미라보다 20세 연상인 페르난도 아라발은 93세로 아직 생존 중이며, 2025년에는 한때 옥살이까지 당했던 모국 스페인에서 최고 수준의 수훈인 왕실 훈장을 받는 등, 그 명성에서 비롯된 영예를 한껏 누리는 중이라고도 전한다.




[****] 김미라(김라)가 자택을 매각하고 연금까지 바쳐 가며 운영했다던 부산 광안리의 문화 공간 '공간나라'는 결국 김 교수의 타계와 함께 운영을 종료한 모양이다. 아쉽지만 유튜브로 검색해 보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는 않을지...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