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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주말을 앞두고 마르잔 사트라피의 타계 소식을 접하니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가는 데에야 순서 없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 50대 중반이라니 아직 한창 활동할 나이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남편과 사별한 이후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는데, 유족의 말로는 '사별로 인한 상심'이 사망 원인이라니 또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트라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시나 자전 만화 <페르세폴리스>를 통해서이다. 1권에서는 팔라비 왕정 붕괴와 호메이니 독재 정권 수립 시기에 이란에서 보낸 유년기를 회고하고, 2권에서는 유럽에서 살다가 이란으로 귀국한 사춘기를 회고했으니, 이후 만화가로 명성을 얻은 과정을 설명하는 3권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제는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페르세폴리스> 1권은 꽤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솔직히 2권은 살짝 실망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부모는 혁명과 전쟁으로 가뜩이나 사회 불안이 일상화된 이란에 계속 머물다가는 딸이 큰 사고라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무리해서 유럽 유학을 보내주었지만, 막상 저자는 거기 가서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철딱서니없는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도 간간히 드러나듯 저자의 부모는 이란에서도 유복한 편이었고, 왕정에서는 물론이고 호메이니 치하에서도 전문직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덕에 딸을 유럽에 유학보내는 부담을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그렇게 보자면 마르잔 사트라피도 아리엘 도르프만이나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전형적인 '검머외 출신 조국의 대변자'라는 모순적인 입장에 처하지 않나 싶다. 


도르프만과 사이드도 유년기에 조국과 모국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미국과 영어를 제2의 조국과 모국어로 선택했지만, 성인기에 와서야 비로소 제2의 조국에서 제2의 모국어로 각자의 조국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변신했으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사트라피가 이란 여성과 민주화의 대변자가 된 것도 유사해 보인다.


물론 도르프만과 사이드와 사트라피도 각자의 조국을 위해 나름대로 기여했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특수하고 혜택 받은 과거를 생각해 보면, 이들의 대표 자격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한국에서 몇 년 살지도 않고 미국에 이민간 사람이 현재 한국의 각종 사안을 거론하며 대변자 역할을 한다면 이상하지 않겠나.


어쩌면 나귀님이 <페르세폴리스>의 성격을 오해했던 걸까. 자전 만화의 전범을 한 발 앞서 제시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지만 실제로는 자전적 내용이 핵심이다. 즉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 목적이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학술적, 객관적 서술을 의도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장점과 단점도 그렇게 이해할 만하다. 저자의 관점은 이란 현대사에 대한 절대적 평가도 아니고, 단지 자신이 속한 계급과 집단의 관점을 보여준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일부 아쉬운 점이 있다 한들,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계급이나 집단까지 대변한다는 것은 위선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 한계야말로 솔직함의 이면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페르세폴리스> 이후 사트라피가 간행한 작품은 많지 않다. <바느질 수다>를 보면 타인의 일화를 재현하는 데에 뛰어난 듯하니,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처럼 최근 반세기 동안 이란인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르포 만화를 작정하고 만들었다면 의외의 수작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대신 저자는 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듯하다.


저자는 대표작 <페르세폴리스>와 <자두치킨>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실사 영화도 여러 편 감독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작품은 로렌 레드니스의 그래픽 노블을 각색한 <방사성>이다. 코로나 유행의 여파로 흥행에는 실패한 모양인데, 원작의 독특한 그림과 구성을 감안하여 차라리 애니메이션 각색을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른바 '예술 만화'를 전문적으로 간행하던 새만화책에서 두 권으로 간행되었는데, 지금은 출판사가 없어진 탓인지 휴머니스트에서 합본으로 재간행된 듯하다. <바느질 수다>, <자두치킨>, <인생은 한숨>도 역시나 휴머니스트에서 나왔는데 지금은 모두 절판이다. 하나같이 가벼운 소품이니, 저자 사후인 지금 와서 재간행은 아마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자두치킨>에 붙은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라는 부제는 뭔가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그 내용 자체도 스포일러일 뿐만 아니라, '까칠'이나 '황당'도 올바른 설명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희극처럼 보일지 몰라도, 인생의 회한을 다룬 엄연한 비극임을 감안하면, 뭔가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개입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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