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예전에 한국사 원전을 읽어보자 싶어서 <삼국사기>와 <고려사> 번역본을 통독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읽을거리였는데,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이 있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고 중고도 희귀해서 구입이야 꿈도 못 꾸었다. 전자책 씨디롬은 나오기 전이고, 도서관에서도 관외 대출 불가 자료이다 보니,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읽어보는 수밖에 없나 싶어 고민스러웠다.


마침 옆에서 지켜보던 후배 하나가 '그런 책 우리집에 많다'기에 무슨 뜻인가 했더니, 할아버지가 국학계의 원로이시고, 마침 실록 국역을 주관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도 이사로 재직하셔서 서재에 국역본이 다수 있었던 모양이다. 후배가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보니, 실록 중에도 어떤 것은 분량이 많고, 또 어떤 것은 단종처럼 그 재위 기간만큼 내용도 짧았다던가.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실제로 재위 기간이 짧았던 문종과 단종의 실록은 분량도 적어서 각각 전2권과 전4권인데, 그나마도 색인을 제외하면 1권과 3권짜리일 뿐이다. 적게는 십여 권, 많게는 수십여 권에 달하는 다른 실록에 비하자면 아담한 편이지만, 언젠가 인터넷 헌책방에 매물로 올라온 <단종실록>을 보고는 살까말까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뭐든 낱권 하나를 사 놓으면 나머지도 구입해 완질을 갖추어야 만족하는 나귀님이니, 자칫 <단종실록>을 샀다간 이후 400여 권이 넘는 다른 실록도 찾아 헤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으로 국역본을 열람할 수 있으니 안 사길 잘 했다 싶으면서도, 문종이나 단종의 '미니 실록' 한 질 정도야 살 걸 그랬나 싶어 살짝 아쉽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1960년대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세종실록>을 시작으로 여러 종을 간행했는데, 수년 뒤에 다른 국역 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까지 번역에 뛰어들면서 잡음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어쨌거나 실록 국역은 1900년대에 일단 완료가 되었지만, 서두른 만큼 오역이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최근에 수정 재간행 사업이 시작된 모양이다.


실록은 워낙 분량이 많아서 전문 연구자를 제외하면 개인의 구입 소장은 무리일 법한데, 그래서인지 한때 "조선왕조실록" 씨디롬이 제작되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 나귀님도 씨디롬이면 하나 구입해 볼까 하는 마음에 서울도서전에서 해당 업체 부스에 찾아가 가격을 문의했더니, 흘끗 한 번 쳐다보기만 하고 대답도 없이 무시해 아니꼬왔던 기억이 난다.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씨디롬 역시 개인보다는 기관 구매자를 겨냥하고 개발비를 감안해 고가로 책정했을 터이니, 지금 가격으로는 수백만 원짜리 자료를 사겠다며 기웃거리는 나귀님이 사뭇 가소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요를 과소평가해서 안하무인으로 굴다가 훗날 복제품 씨디롬이 단돈 몇만 원에 판매되며 매출을 잠식당해 폐업했다니 씁쓸한 일이다.


한때 실록 전권을 담은 기술 혁신이라 칭송되던 씨디롬도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쓰는 사람도 없고,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실록 전권을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다만 이제는 자료가 있어도 열람할 시간이 없고, 열람할 시간을 얻어도 시력과 지력이 모두 쇠퇴했으니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나저나 새삼스레 <단종실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 까닭은 당연히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종과 엄흥도 이야기라고 하기에, '아니, 그거 모르는 사람 있나' 싶어 시큰둥했었다.(문득 소설 <다빈치 코드>가 인기이던 시절, '아니, <성혈과 성배>에서 다 설명한 이야기인데, 그게 뭐 신기하냐'며 코웃음 친 기억도 난다).


그런데 엄흥도 일화나 한명회의 외모에 대해서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는 사람이 많은 듯하니, 세대가 또 한 번 바뀌며 한때 익히 알려진 사실마저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언젠가 <놀면 뭐하니>에서 '주주' 자매가 '사육신'(死六臣)을 무슨 '신'(神)으로 착각해 유재석에게 핀잔을 들었듯, 머지않아 장희빈이나 임꺽정도 모른다는 사람이 나오려나.


심지어 바깥양반도 엄흥도에 대해 처음 듣는다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맹꽁이 서당>에도 나왔던 이야기이고, 예전에 큰 인기를 끌고 훗날 리메이크까지 된 드라마 <사모곡>에서도 '엄흥도 후손 찾기'가 줄거리에서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로 나왔으니 제법 유명한 일화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렇게 어느 정도 망각된 다음이라 영화도 인기인 것일까.


<왕과 사는 남자>의 경우, 영화의 완성도는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반면, 배우의 호연에 대해서는 칭찬이 많은 듯하고, 무엇보다도 결말 부분의 비극적인 묘사가 심금을 울렸다는 데에 관객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갖가지 폭력과 살인과 패륜과 반전이 일상화된 'K-그로테스크' 영화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순한 맛을 반기는 것은 아닐지.


그나저나 바깥양반도 조만간 영화를 보고 오면 십중팔구 단종 책을 찾아내라고 난리칠 듯해서, 뭐가 있나 미리 뒤져 보니 영화의 배경이라는 사육신 관련서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사육신의 유고집인 <육선생 유고>이고, 또 하나는 사육신의 행적집인 <육신록>으로 표제작을 비롯해 "단종출손기", "참판박공일기", "육문정출절행록", "육신묘비명"이 들어 있다.


<육신록>의 역주자 홍기원은 출판사 민속원의 대표이기도 한데, 자기 집안인 풍산 홍씨 전래 자료인 궁중문학 필사본 <서궁일기>, <육신록>, <읍혈록>의 역주본을 간행한 바 있다. <육신록>에 수록된 가계도를 보면 풍산 홍씨 중에는 홍국영과 혜경궁 홍씨처럼 눈에 익은 인물도 눈에 띄는데, 한 가문에서 궁중문학의 대표 작가가 여러 명 나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일본 중세 여성 문학 <가게로 일기(청령일기)>를 쓴 미치쓰나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와 비슷한 가계도를 그려 보면, 세이쇼나곤과 무라카미시키부를 비롯해 헤이안 시대의 주요 여류 작가들이 혈연과 직업으로 연결된 관계망이 나타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록 시대와 정서의 차이는 있지만 꽤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육신록>에 수록된 자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육신이 중심이기 때문에, 엄흥도의 행적은 노산군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정도로 짤막하게 한두 문장만 언급되고 만다. 그 행적을 감안해 보면 실록에는 당연히 언급이 없고 훗날 야사에서만 언급되었다고 하니, 아마 <왕과 사는 남자>의 각본 집필 과정에서도 이 자료가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물론 야사인 탓에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는 점도 감안할 법하다. 정사에서도 사실의 미화 시도가 나타나듯이, 야사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이 나타나니까. <육신록>의 내용 중에도 훗날 단종의 원혼이 나타나 영월 원님이 줄줄이 죽어나갔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후일담이 나오니, 그 전승이 사실에서 상상 차원으로 넘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인기 덕인지 영월에 관광객이 몰린다더니, 알라딘에도 뒤늦게 단종 관련서가 우후죽순 간행되니 우스운 일이다. 이러다간 <단종 인문학>, <열아홉 살에 읽는 단종>, <처형은 당하지만 사약은 먹기 싫어> 같은 책도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물론 일개 영화를 빌미로 세조 왕릉에 악플 다는 사람보단 이런 책이라도 읽는 사람이 차라리 나아 보이기는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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