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김정은이 전용 열차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또다시 화제가 되었다. 지난번 트럼프와의 회담 당시에도 굳이 기차로 중국을 지나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여행길을 선택해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청와대에서도 그런 번거로운 여정에 열심히 의미 부여를 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소련제 전용기가 낡아서 울며겨자먹기로 전용 열차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전한다.
어쩌면 비행기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것이야말로 북한 김씨 일가의 취향인지 고집인지도 모르겠는데, 김정은에 앞서 그 아비 김정일이 무려 모스크비까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전용 열차로 오갔었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차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었는데, 십중팔구 불안한 처지에 신변 보호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흥미롭게도 2001년 여름 김정일의 모스크바 방문 당시 문제의 전용 열차에 동승했던 러시아 관료의 수기가 우리나라에도 <동방특급열차: 김정일과 함께한 24일간의 러시아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당시 러시아 극동지구 총괄 행정관이었던 저자 풀리코프스키는 푸틴의 초청을 받은 김정일과 국경 도시 하산에서 만나서 모스크바까지의 왕복길에 동행한다.
안전을 위해 김정일의 전용 열차 앞뒤로 러시아 철도 당국과 외교 당국의 요원들이 탑승한 열차가 줄지어 달리는 형국이었다는데, 저자는 긴 여정 내내 종종 김정일의 부름을 받고 전용 열차에 탑승해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회고한다. 풀리코프스키의 눈에 비친 김정일은 의외로 식견이 넓고 예리하며, 무엇이든지 간에 직접 확인해야만 만족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물론 김정일과 나눈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전용 열차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저자도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십중팔구 외교와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신 이 책에서 저자는 남북한의 역사와 사회, 양국과 러시아의 관계 등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서술했는데, 아마 이 주제에 무지한 러시아 독자들을 위한 배려였을 법하다.
차라리 김정일의 발언이나 전용 열차, 하다못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대해서라도 좀 더 언급했다면 모르겠는데, 뭔가 조금 설명하다 말고 남북한 역사 등의 여담으로 흐르다 보니, 아무래도 두서없고 산만한 느낌이 강해서 자료 가치는 예상보다 높지 않을 법하다. 오히려 군인 출신인 저자가 체첸 참전과 아들 전사에 대해 짧게 언급한 부분이 더 눈길을 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김정일의 전용 열차는 무려 그 아비 김일성의 집권 당시에 스탈린이 선물로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일본 제작설을 부인하면서, 다만 이후에 추가 장착된 설비는 일본에서 제공했을 수도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내부 설비는 상당히 안락한 편이며, 심지어 운행 상황을 알 수 있는 전자 지도까지 스크린에 나왔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정일과 환담 중에도 에어컨이 영 신통치 않아서 땀이 흘렀으며, 저자가 탑승한 호위 열차에서도 에어컨은 물론이고 급수조차 불안정해서 애를 먹었다고 회고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북한과 러시아 모두가 기반 시설 노후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손님과 주인 모두 피차 궁핍한 상태에서 만났으니 상당히 겸연쩍지나 않았을까.
명색이야 전용 열차이고, 각종 편의 시설과 안전 장치까지 갖추었다지만, 실상은 70년도 넘은 구 소련 시절의 물건을 계속 사용하는 셈이라니 (일각에서는 스탈린의 선물이 이미 박물관에 가 있고, 이후 새로 만든 열차라는 주장도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것은 물론이고, 어찌 보자면 거듭된 실정으로 파탄 위기에 처한 세습 정치와 국가 경제의 상징 같기도 하다.
북한의 세습 정치는 사실상 사이비 종교나 다름없는 수준인데, 현재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나름 외국 물까지 먹었다면서도 무려 3대 사이비 교주 노릇을 순순히 이어받아 행하고 있으니 그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이번에는 딸까지 동행해서 향후 4대째 세습까지도 의도하지 않느냐는 추측까지 나왔는데, 정말 현대 사회에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귀님이 본 김정은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언젠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새로 개장한 북한 스키장을 순시하던 중에 혼자 리프트를 타는 모습이었다. 측근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에는 스스로를 잘났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별다른 안전 장치도 없이 공중에 떠 있다 보면 일종의 '현타'도 오지 않았으려나. 과연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