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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최근 여수의 한 식당에서 유튜버 손님을 홀대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떠들썩했는데, 그 뉴스를 접하고 보니 엉뚱하게도 예전에 창경원에 있었다던 '여수거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난번 창경원 식물원 이야기를 하려고 사육사 김정만의 에세이집을 오랜만에 꺼내 뒤적이다, 이른바 동물원 비화를 모은 장에 실린 "'여수거인'이라는 사나이"란 글에서 본 내용이다.


김정만의 설명에 따르면, 1960년에 창경원에 신입 남자 직원이 하나 들어왔는데, 당시 한국 최고 신장 겸 세계 3위 신장의 소유자였던 여수 출신 거인이었다. 보통 사람의 서너 배에 달하는 체격이라서 식사도 한 끼에 비빔밥 15인분과 불고기 10인분을 뚝딱 먹어치우다 보니, 일반 직원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애초에 그가 창경원에 취업하게 된 것도 유별난 체형 때문에 생활고를 호소하자, 어느 유력 정치인이 '빽'을 써서 그곳에 꽂아 주었기 때문이었다던가.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취직 후에도 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처음에는 창경원 숙직실에 머물렀지만, 함께 지내는 동료들이 불편을 호소한 까닭에 머지않아 외부 창고를 개조해서 전용 숙소로 사용했다고도 전한다.


그래도 창경원 수위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관람객 사이에서 구경거리로 인기를 끌면서,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식으로 부수입을 쏠쏠하게 올리며 제법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이때부터 엉뚱하게도 노름에 빠져들면서 그 많은 돈을 날렸고, 건강조차 돌보지 않으며 골수염까지 생겨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체구가 워낙 커서 창경원을 떠나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구급차 대신 트럭 짐칸에 실려 갔고, 사후에도 그 특이성을 감안해 표본 처리 여부를 고려하다가 유가족과 논의 끝에 화장했지만, 역시나 덩치가 크다 보니 그 과정에서도 '그저 여러분의 상상에만 맡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이 김정만의 설명이다.(십중팔구 시신을 가마에 넣느라 절단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김정만의 글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신장과 인적사항 같은 자세한 정보가 없기에, 뒤늦게나마 관련 자료가 있나 구글링해 보니 마침 누군가가 '돌산장사 이순근'에 관해서 정리해 놓은 블로그 글이 있었다. 소설가 김용필과 외사촌동생 한이식 등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의거했다는 설명에 따르면, 여수거인은 신장 230센티미터에 체중 200킬로그램이었다.


1935년 여수시 돌산읍에서 태어나서 '여수거인'이니 '돌산장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보통 사람의 다섯 배나 식사를 하고 1950년대에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고 전한다. 해당 자료에서도 그가 노름벽을 끊지 못한 까닭에 빈털터리가 되어 1963년에 28세로 사망했다고 하니, 입원 기간까지 감안하면 창경원에서는 길어야 3년이 못 되게 근무했을 법하다.


역대 세계 최장신인 미국의 로버트 워들로가 272센티미터였고, 현존 한국 최장신 하승진이 221센티미터이며, 북한의 농구선수 리명훈이 235센티미터였으니, 여수거인의 체격을 대강 짐작해 볼 만하다. 여수거인의 사인은 골수염이었는데, 도박에 몰두하느라 뜨거운 방바닥에 발목이 닿아 화상과 염증이 생긴 것도 몰랐을 만큼 평소 고통에 둔감한 체질이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워들로도 키 272센티미터에 체중 200킬로미터로 워낙 육중한 체격이라 다리가 불편해 보조기를 착용했는데, 나중에는 보조기에 발목이 쓸려 염증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까닭에 치료 시기를 놓쳐 결국 사망했다고 전한다. 그 큰 덩치가 비교적 사소한 염증으로 사망하는 아이러니야말로 거인들의 공통적인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워들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문득 <거인의 역사>라는 그래픽노블이 생각난다. 무려 건물 3층 높이인 10미터에 달하는 (물론 가상의) 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중간에 워들로의 일화도 유사 사례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거인은 처음에만 해도 명물로 인기를 얻고 가정도 꾸리지만, 나중에는 의사소통 불가로 인간 사회에서 소외되어 혼자가 되고 만다.


한때는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갔고, 대중의 사랑은 물론이고 정부의 지원도 받으며 국가를 위해 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몇 가지 불운을 겪으며 몰락하게 되자, 과거에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덩치가 나중에는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인간 사회를 떠나 자연 속을 배회하게 되면서부터는 폭풍이나 홍수처럼 일종의 자연재해와 비슷한 존재로 변한다.


여수거인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도 종종 이 만화를 떠올린 까닭은 마침 바깥양반 지인 중에도 키 220센티미터의 거인이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부계 유전인 모양인데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농구선수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되었고, 결혼해서 유학을 떠난 후에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종종 근황을 전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은 예전에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가 평소에 어떤 불편을 겪는지 목격하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러 걸어가는 내내 행인들이 쳐다보는 것은 물론이고, 꼬마들은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오고, 어른들도 가까이 다가와서 '키가 몇이냐', '농구선수냐' 등등 질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모두들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지 않았을까.


성질 더러운 나귀님 같으면 짜증을 부리고도 남았을 법한 상황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온화한 태도로 '220센티미터입니다', '농구선수는 아닙니다' 등등 일일이 답변을 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니 살짝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보단 남의 시선을 비교적 덜 의식해도 될 법한 미국에 눌러 앉은 그의 결정이 이해도 되고 말이다.


영화나 만화 같은 창작물에서는 덩치도 크고 동작도 날렵한 거인이 종종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2미터만 넘어도 체중 때문에 신체에 무리가 간다고 알고 있다. 비유하자면 승용차용 엔진을 가지고 탱크를 굴리는 것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워들로와 여수거인의 경우에서처럼 고통에 둔감한 것 역시 신체 기능이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인은 안타깝게도 일찍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앞에서 말한 바깥양반의 지인 역시 비슷한 운명을 예감하고 살아갔던 듯하다. 그의 부친은 중년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망했고, 비슷하게 키가 컸던 동생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간혹 근황을 접할 때마다, 우리 부부의 대화가 항상 그의 건강과 가족에 대한 우려로 마무리된 것도 그래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살았던 또 다른 거인의 생애는 흥미로운 예외로서 각별히 주목할 만하다. 창경원의 수위였던 여수거인과 비슷하게 과거 대구 달성공원에서 수위로 근무하며 지역 명물로 통했던 키 225센티미터의 류기성이라는 분인데, 무려 73세까지 장수하다가 1999년에 사망함으로써 거인이라고 해서 항상 단명하는 것은 아님을 입증했다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도 나오듯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지만, 저 거인들처럼 평생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날 수많은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질문이 집중되는 상태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성큼성큼 걷던 거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고독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의 의연함에 대한 존경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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