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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신간 중에 대니얼 데닛의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알라딘 미리보기로 클릭해 보니, 추천사와 역자 서문이 대부분이고 정작 책 본문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컴퓨터에서 보면 해상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평소처럼 예스24로 가서 미리보기를 확인해 보니 여기는 알라딘보다 쪽수가 적다. 다시 교보문고로 가서 미리보기를 눌러보니 여기는 무려 70쪽이나 된다!


그런데 하나 묘한 점은 진화론을 적극 옹호하는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무려 '복음성가'가 등장한다는 거다. 책에서는 "왜 그런지 말해줘"라 직역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이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노래다. 즉 본문에서는 "말해줘 별들이 왜 빛나는지 / 말해줘 담쟁이가 왜 휘감는지"로 옮긴 가사를 "어이해 별들 반짝여 / 어이해 바다 푸르러"로 옮긴 것이다.


데닛은 "단순한 멜로디에 쉬운 화음"이 특징인 "작고 보물 같은 곡"이라고 호평했는데, 실제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귀님도 이제껏 기억하면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흥얼거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서 영어 가사로 검색하면 어느 노부부가 함께 부르는 버전이 있는데, 독창 버전보다 이렇게 이중창 버전으로 들어야만 데닛의 묘사가 더 잘 이해될 만하겠다.


이 대목이 아이러니한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가 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한때 교회에 다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진화론을 옹호하는 내용이니, 막상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서 읽지 않을 법한 종류의 책일 수밖에 없다. 다만 미국에서는 복음성가이기 이전에 민요 겸 동요로도 널리 알려진 노래라지만 말이다.


물론 데닛의 진짜 의도는 이 멋진 노래의 가사에 함축된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산산조각낸 진화론의 세계관을 설명하고 옹호하려는 것이지만, 자신의 관점과는 불일치하는 노래일망정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만큼은 충분히 호감을 살 만하다. 어쩌면 진화론자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바라보는 일각의 오해를 일축할 만한 행동처럼도 보이고.


얼마 전에 발자크의 "무신론자의 기도"에 대해 쓰면서도 언급했지만, 가끔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심지어 배척하는 사람에게서 기독교인보다 더 기독교인다운, 또는 기독교인을 능가하는 훌륭한 성품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성서 전체에서 때로는 이방인의 믿음이 유대인보다도 더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은 아니려나.


역시나 진화론자이며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도 자서전 <자연주의자>에서 언젠가 마틴 루터 킹의 설교와 기도에 자기도 모르게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곧장 전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과학과는 또 다른 차원에 속한 종교나 예술 같은 문화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한 셈이 아니었을까.


비록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처럼 '거친' 사례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무신론자라고 해서 항상 종교나 관습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칼 세이건의 사례처럼 과학과 종교 각각의 가치를 인정하는 동시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영역에 침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를 표시했을 뿐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무신론자도 종교의 가치를 존중하며 가끔 눈물까지 흘리는 판에, '하느님 까불면 죽어'라는 망언을 일삼는 극우 선동가의 주장에 동조해서 탄핵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기독교인들도 있다니 참 어이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대니얼 데닛이며 에드워드 윌슨이며 칼 세이건이며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가 그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가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 그런데 <다윈의 위험한 생각>의 번역 품질은 뭔가 아쉽다. 공짜 알바를 해줄 의향까지는 없으니 딱 하나만 예를 들자면, "약한 연결고리들을 품었을 수도 있는 --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을 바라는 -- 한두 개의 거대한 논증의 사슬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45쪽)의 경우,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을 바라는"(hope against hope)이라는 부연 구절을 차라리 "물론 근거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좋았을 법하다. 반대측에서는 진화론이 '거대한 사슬 같은 논증 한두 개'로 유지되는 구조라고 간주하고, 어쩌면 그 사슬에 '약한 연결고리'가 있어서 끊어질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지만, 진화론자인 저자가 보기에는 그런 기대가 '근거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첨언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문장은 마치 "약한 연결고리를 품다 = 희망을 바란다"로 오독되기 쉽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말하려는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 사실은 '더원의 위헌한 생강'으로 오독될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무려 1천 쪽에 육박하는 분량에, 무려 6만 5천 원이나 하는 정가에, 무려 번역 5년에 교정 2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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