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알라딘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광고 중에 희한하게도 노란 과일을 표지에 박아 놓은 것이 있어서 뭔가 궁금해 살펴보니 <망고와 수류탄>이라는 책이었다. 제목이며 표지만 보면 '수류탄 던져야 하지만, 망고는 먹고 싶어' 류의 에세이라든지, '사상 최강의 수류탄, 전생했더니 망고였다' 류의 소설이라야 어울릴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생활사 연구서라고 한다.


일본인 사회학자가 오키나와에서 현지 연구를 실시하며 수집한 증언을 토대로 쓴 생활사 이론 논고라는데, 왜 하필 '망고'와 '수류탄'인지는 알라딘 미리보기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책 소개 글을 토대로 짐작하면, 오키나와 전투 때 정부 지시대로 수류탄 자폭을 포함한 결사 항전을 앞두고 자녀들과 망고를 나눠 먹었다는 어느 할머니의 회고와 관련이 있나보다.


특이하게도 최근 10여 년 사이에 오키나와 관련서가 여럿 간행되었는데, 십중팔구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제주 해군 기지 건설 관련 논란의 연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독특한 자연과 문화를 보유하고, 본토와 갈등과 차별의 역사를 경험했으며, 군사 기지 건설까지 공통점이 많다고 본 모양인데, 이후의 상황을 보면 해군 기지도 필요했으니 속단은 금물이겠다.


그나저나 과일과 폭탄의 조합은 뭔가 의외다 싶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본에는 선례라 할 만한 책도 없지 않다.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요절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가장 유명한 단편 "레몬"을 보면, 무료한 일상에 지친 화자가 무심코 그 과일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마루젠 서점에 들어가 책 사이에 마치 수류탄처럼 놓아두고 나온다는 묘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레몬과 수류탄의 조합이야 에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 표지에도 등장하는데, 그 제목은 레몬과 수류탄을 뜻하는 러시아어 '리몬'과 '리몬카'에서 따온 것이며, 이 실화 소설의 주인공인 반정부 활동가 에두아르드 사벤코의 별명이기도 하다. 평소 거침없는 언변으로 찬반양론을 일으키며 저서도 여럿 간행해서 제법 화제를 모았지만 2020년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딱 여기까지 쓰니까 바깥양반이 들어와서 '또 내 욕을 쓰느냐'며 검열에 들어가는데, 레몬과 수류탄 이야기를 보더니 '왜 <카탈로니아 찬가>에 나오는 애완 수류탄 이야기는 빼먹었느냐' 묻는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말로는 무기와 보급이 워낙 엉망이라 수류탄도 불발이 많아서, 심지어 이쪽이 던지면 저쪽이 주워서 되던지기도 했다나.


그렇게 해서 수류탄 하나가 계속 왔다갔다 하다 보니, 나중에는 정이 들어서 수류탄에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는 거다. 조지 오웰 책은 워낙 예전에 읽어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뭐,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일단 적어보기는 해야 되겠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대의명분을 위해 모인 여러 세력이 서로 퉁수쳤던 이야기로도 기억해서 어쩐지 요즘 부쩍 생각이 났었다.


그나저나 가지이 모토지로는 또 다른 단편에서 "벚꽃이 활짝 핀 나무 밑에는 사람 시체가 묻혀 있다"는 사뭇 도시전설스러운 이야기를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3월이 되어도 날씨가 쌀쌀해서 과연 봄이 올까 싶었는데, 황사도 가시고 벚꽃도 피어난 듯하니 가까운 공원에 한 번 나가봐야겠다. 물론 산불 뉴스를 며칠째 본 다음이니 마음도 가볍지는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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