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탄핵 찬반 시위 뉴스를 보니 문득 해방 직후의 신탁 통치 찬반 시위가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좌익과 우익이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서로를 매도하며 극렬 시위를 벌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사안이야 다르지만, 툭하면 하나임을 강조하던 민족이 이처럼 양분되어 대립한 사례를 더 찾기도 어려워 보이니, 이번 일도 후세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탄핵 반대를 주도하는 극우 세력의 행보는 나날이 기세를 더해 가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마저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최근 시내에 다녀온 바깥양반의 목격담에 따르면, 야당 대표의 이름을 부르고는 '밟아! 밟아!'를 외치며 함께 발을 구르는가 하면, 지하철 안에서까지 '탄핵 찬성하는 놈들은 때려죽이자'고 외치는 노인네들도 있다던가.
이른바 증오 범죄에 대해서는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귀님으로서도 (왜냐하면 '증오'와 '범죄' 사이의 간극은 예상 외로 넓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직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를 좋아할 리 만무한 나귀님이지만, 설령 두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고 해서 주먹부터 휘두를 리는 없지 않겠나!) 이쯤 되면 진짜 큰일이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탄핵 심판 선고일에 경찰이 갑호비상령을 발동하는 한편, 헌법재판소 인근 학교며 주유소(!)까지도 휴업하게 만들 예정이라니, 이미 어느 정도는 폭동이 당연히 벌어지리라 예견되는 상황은 아닐까. 이쯤 되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제목처럼 "삶은 콩을 곁들인 연한 구조물, 또는 내전의 예감" 속에 살아가는 판이니,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싶다.
여차 하면 과거 다른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내전 상황과 별 차이 없는 상황이 여기서도 펼쳐지려나. 예를 들어 유고와 르완다 내전 당시에는 수십 년 알고 지낸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이웃집에 쳐들어가는 끔찍하다 못해 초현실적인, 정말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선례가 없지는 않았다.
바로 육이오 전쟁 동안 우리도 그놈의 '동족상잔'을 지겹게 저질렀다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리거나 외면해버린 상황이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그 무지막지함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 좌익이 기세등등하게 누군가를 학살하면 훗날 국군이 진격하며 우익이 돌아와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니까.
최근 완독한 강신항 교수의 전쟁 일기에도 그런 목격담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전쟁이 벌어져서 고향 아산으로 내려갔더니, 인민군이 들어오고 좌익이 위원회를 만들어 동참을 권유했는데, 몇 번 협조하는 척하다가 자택 다락에 숨어 나가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좌익 여럿이 반동 분자를 잡겠다며 집으로 쳐들어오기도 했다던가.
동네 사람 여럿이 목숨을 잃고서야 인민군이 물러갔는데, 곧이어 국군을 따라 돌아온 우익이 원수를 갚겠다며 좌익 협력자를 뒷산에 끌고 가 처형했다는 것이 당시 자경단이었던 강 교수의 목격담이다. 비록 본인도 구사일생의 상황을 겪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악순환만큼은 좌익이건 우익이건 양쪽이 똑같이 잘못한 듯 보이더라고 평가한다.
지난번 서부지법 난입 사건으로 대표되는 탄핵 반대 세력의 행보에서 가장 사람 질리게 하는 부분도 그 폭력성이다. '태극기 집회'로 지칭되는 극우 활동이야 이전부터 있었지만, 자기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을 공격하는 모습이야말로 사실상 유례가 없는 호전성의 표출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행위가 아닌가!
그런 행동들의 원인 규명은 아마 이번 탄핵 심판이 끝나고 나서도 숙제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 비리에 발목 잡힌 대표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야당의 입법과 탄핵 폭주가 매우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극우 세력의 증오와 폭력 표출도 그에 못지않게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놓은 판이니, 솔직히 어떻게 해야만 법치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나날이 격화되는 정치적 대립을 지켜보면 결국 지난 반세기 이상의 역사가 결국 제자리 걸음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육이오의 동족상잔도 결국 이념 대립의 허무함을 보여준 사례일 뿐이었건만, "내전의 조짐"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상황은 마치 75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니 이래저래 착잡할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