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이란 책이 간행된 모양이다. 제목 그대로 저 유명한 재판 이전까지 피고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무지와 맹종이 아닌 확신범 나치로서의 악행을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한나 아렌트의 재판 방청기에 나온 '악의 평범성'의 사례로만 유명하지만, 실제로 아이히만은 '괴물'이란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악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렌트의 개념은 애초부터 나치 동조자에게 면죄부로 악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바꿔 말해서 식민 통치며 태평양 전쟁에 적극 관여한 일본인 관료들이 무지한 종범이었다면 순순히 믿을 수 있겠나. 바로 이 대목에서 피해자인 우리로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데, 최근의 사태와는 별개로 홀로코스트에만 한정하자면 유대인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겠다.
아렌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망명한 신세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유럽 유대인 공동체의 무저항과 순응성을 비판하다 동족 사이에서는 일종의 내부 총질자로 반감을 사기도 했다. 아울러 아이히만의 체포와 이송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절차적 하자를 지니고 있었으니, 아렌트의 입장에서는 아이히만 재판 자체를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일각에서는 아렌트가 재판을 일부만 방청하고 얻은 단편적인 인상에만 의거해 '악의 평범성' 개념을 도출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니체와 헤겔의 영역자로 유명한 유대계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이 아렌트를 학자 아닌 언론인으로 분류한 다음, 인간의 선악 이중성이야 신조어 없이 톨스토이의 단편 "무도회 직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꼬집은 것이 대표적이다.
톨스토이의 단편 속 화자는 무도회에서 어느 대령 부녀를 만나게 되는데, 딸과 함께 춤을 추며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저 아버지가 무도회 직후 본업으로 돌아가서는 탈영병을 무자비하게 체벌하는 냉혹한 장교가 된 것을 보고 경악한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 행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선악 이중성을 전제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행보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둘러싼 논쟁은 고대부터 있었으며, 향후로도 쉽게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법하다. 다만 역사와 생활 모두에서 드러난 증거만 놓고 보면, 인간에게는 선악 이중성이 있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할 수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전적으로 선한 사람도 없고 전적으로 악한 사람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고 말이다.
히틀러도 누군가에게는 '아돌프 아저씨'였을 수 있고, 역사상의 다른 모든 독재자와 범죄자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날 넓은 재판정에 설치된 방탄 유리 상자 속에서 초라해 보인 아이히만도 다른 날에는 특유의 오만과 냉혹을 종종 드러냈다고 전하니, 이 모두를 전부 방청했다면 아렌트도 '악의 평범성'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놓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아렌트의 결론은 인간의 선악 이중성을 외면하고픈 대중의 심리를 반영할 수도 있겠다.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까닭은 그 당시에 문명국으로 간주되던 독일에서 벌어진 종족 학살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인을 그저 괴물이라고만 간주하기는 어려워 보이니, 결국 우두머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무지한 바보들이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은 아닐까.
실제로 '평범한' 독일인 대부분은 종전 이후 자신들의 무지함과 힘없음을 애써 강조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고, 국가의 범죄에 대한 공동 책임이나 집단적 죄의식 같은 개념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장 아메리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그렇지 않다고, 즉 평범한 독일인도 나치 동조자와 똑같이 악의적이고 적극적인 유대인 탄압에 임했다고 반박한다.
르완다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유사한 종족 학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홀로코스트 역시 특정 소수 민족 집단에 대한 유서 깊고 보편적인 반감에 결국 불이 붙은 경우였다. 그런 인종차별적 편견이라면 나치 동조자뿐 아니라 평범한 독일인 역시 공유하고 있었을 터이니,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반감을 표출했던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그렇다 해서 독일인을 무작정 악마화할 수는 없다. 대니얼 골드하겐의 저서 <히틀러의 적극 동조자들>을 둘러싼 논란에서 나타났듯이, '악의 평범성'이건 '평범성의 악'이건 간에 입증은 쉽지 않고, 왜곡과 과장의 가능성이 항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히틀러의 적극 동조자들> 사이에서 최대한 균형을 찾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치 독일에서는 히틀러에 찬성한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한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찬성자가 더 많다 보니 자국에는 물론이고 외국에도 큰 불행을 자아냈는데, 그 과정이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였음을 감안하면 독일인으로서도 '집단적 죄의식'은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이웃에 대한 민폐라는 점에서는 지금의 이스라엘인이나 미국인도 마찬가지이겠고.
'악의 평범성' 개념은 사실상 책임 전가이기 때문에, 아이히만의 경우에서처럼 범죄를 축소하고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에 악용되기가 편리하다. 단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이며 장관이며 군인들의 모습도 한 순간만 떼어 보면 '악의 평범성'의 사례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일을 '알고도 저질렀다'는 것이 진실일 테니까.
현재 탄핵 심판을 둘러싸고 나타난 대통령 지지자들의 망동 역시 적극적 동조일 뿐, 단순히 '악의 평범성' 같은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시민 의식이라는 겉치레마저 내던지고 '그 피를 나와 내 후손에게 돌려도 좋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 유아적 퇴행이 아닐 수 없으니, 과연 탄핵이 끝나더라도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의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악의 평범성' 개념을 수용하는 것도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훌륭한 전략일 수 있겠다. 독일과 일본과 중국 모두 학살과 광기는 지도자의 잘못이며 국민은 몰랐다고 시치미를 떼고 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매번 과거사 청산을 외치면서도 헛수고인 우리보다 그들이 한 수 위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