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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재간행된 모양인데, 어째선지 제목이 <버진 수어사이드>로 바뀌어 나왔다. 그렇다면 "그날 아침은 리즈번가에 남은 마지막 딸이 자살할 차례였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도 "그날 모닝은 리즈번가에 남은 라스트 도터가 수어사이드할 턴이었다"로 바뀌었나 싶어 살펴 보았더니 아니라서 실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처녀"와 "자살" 모두 최근 기피어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구글북스에서 "버진"으로 검색해 보니 내용상 "처녀(아가씨)", "동정녀(마리아)", "동정(첫경험)" 등 중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책 소개글에서 "앳된"을 "애띤", "섬찟"을 "섬ㅉㅣㅅ "으로 쓴 것처럼 출판사 나름으로는 고심해서 내놓은 결과물인 것 같다.
사실 작품의 여러 가지 문맥 모두에 그나마 자연스레 어울리는 단어는 "동정"(童貞)"일 것인데, 제목부터 "처녀 자살"과 "동정 상실"(중간에 기묘한 시가 나온다!)로 중의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번역 제목인 <처녀 자살 소동>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은 것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처녀들, 자살하다>로도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소설은 "자살한 다섯 자매", 영화는 "버진 수어사이드"로 다르게 옮기고, 중국에서는 소설과 영화 모두 "사망일기"이며, 다른 나라들도 "버진 수어사이드"로 음역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어디서나 그놈의 제목 때문에 골치를 앓기는 앓았던 것 같다. 같은 작가의 첫 작품인 <미들섹스>도 마찬가지였으니, 이쯤 되면 상습적이라고 하겠다.
영어 초보인 한국 남성이 젊은 미국 여성에게 "버진이세요?"라고 물었다가 망신당했다는 일화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오래 된 유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처녀"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일본에도 비슷한 유머가 있다. 미국 기차역 매표구에서 잠시 망설이던 일본인이 "에또..."라고 말하자 기차표 여덟 장이 나왔다는 거다!)
언젠가 유모차/유아차 논란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단어에 여러 가지 뜻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일상 대화를 비롯한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처녀"나 "아가씨" 같은 단어를 기피하는 최근의 풍조는 무지보다는 억지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즉 충분히 다른 뜻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거다.
"총각"도 원래는 춘리 비슷한 헤어스타일에서 비롯된 단어라지만,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굳어진 그 말을 이제 와서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붉은 악마"처럼 원래는 비하와 멸칭이었던 단어조차도 긍정적인 맥락으로 해석하여 수용한 경우가 있으니, 한때 별다른 악의 없이 쓰던 단어를 이제 와서 기피하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한끗차이인 "의원"과 "인원"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에서 매일 같이 팽팽한 대립이 벌어지는 현재 상황을 보면, "처녀"가 "버진"이 된 것도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고, 잘 살펴보면 "버진"이 아니라 "바진"이나 "비진"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처녀"가 "버진"으로 대체되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으면 결국에는 리처드 브랜슨만 혼자 웃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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